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회의가 '녹색 무역전쟁'을 촉발할 것인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기후회의에서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이들 국가의 상품에 관세를 부과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이 17일 보도했다.

'국경조정(border adjustment)' 조치로 알려진 이 방안은 탄소세를 도입한 국가가 이를 도입하지 않은 국가의 상품에 수입관세를 매기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 감축으로 생산 비용이 늘어나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것을 우려하는 노조와 중공업 부문 등이 정부에 국경조정 조치 채택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이를 채택할 경우 개도국들은 보복조치로 대응해 무역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경조정 조치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의 갈등은 지난 15일 열린 기후회의 협상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 협상에서 개도국들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계획에 국경조정 조치가 포함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과 유럽연합(EU), 호주 등은 이를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기후변화 방지를 빌미로 보호무역주의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기존 원칙에 미국과 중국, 호주 등이 동의하면서 갈등은 봉합됐지만 국경조정 조치는 여전히 협상 카드로 남아 있다.

이날 선보인 한 합의문 초안에도 "무역조치에 관한 조항들이 마련돼야 한다"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전문가들은 세계무역기구(WTO)도 회원국의 환경보호를 위한 조치를 허용하고 있어 국경조정 조치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인도가 이에 대해 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혔으며 중국도 기후변화 방지를 보호무역주의의 핑계로 사용하는 데 반대한다고 경고해 이들이 보복조치에 나설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무역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키스 록웰 WTO 대변인은 "국경조정 조치에 관한 개별 국가의 행동은 분노를 촉발할 수 있으므로 코펜하겐에서 다자적으로 결론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국경조정 조치는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 복잡한 생산단계를 거친 상품의 생산이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측정 방법 등 어려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IHT는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