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제1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에서 실무협상이 한창인 가운데 선진국 그룹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합의문 초안이 유출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대해서 선진국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고 있어 개도국 측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총회 이틀째인 8일 주최국인 덴마크와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측이 만든 합의문 초안의 원문과 분석 자료를 입수해 공개했다. A4용지 9장으로 구성된 이 초안에 따르면 UNFCCC의 192개 회원국은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50% 줄이는 데 동의해야 하며,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2020년까지 배출 상한선을 지정해야 한다. 현행 교토의정서에는 개도국에 감축 의무를 지우지 않고 있다.

초안엔 또 선진국은 내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매년 100억달러의 온난화 대처 지원금을 제공하며 이는 개도국에 앞서 최빈국과 기후변화 취약국에 우선적으로 배정한다고 명시됐다. 이 밖에 다른 항목들의 주요 숫자들은 합의 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X자'로 남겨뒀다.

개도국 131개국의 모임인 77그룹(G77)과 중국은 초안 내용이 선진국에만 유리하도록 만들어졌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중국의 코펜하겐 총회 협상대표인 수웨이는 "아직 산업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개도국에 감축 의무를 강제하는 건 부당하다"며 "100억달러의 연간 지원금으로는 개도국 국민 한 사람 앞에 2달러짜리 커피 한 잔도 사줄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G77 의장인 루뭄바 스타니슬라우스 디아핑 수단 유엔대사도 "회의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G77이 회의 자체를 보이콧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세계 인구의 80%를 더욱 큰 고통과 불의로 몰아넣는 불공정 타협안에는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미국이 온실가스를 유해물질로 규정함에 따라 코펜하겐 총회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한껏 고무됐던 UNFCCC 측은 초안 유출 파문이 확산되자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이보 드 보어 UNFCCC 사무총장은 "공개된 초안은 비공식적인 아이디어 교환 차원의 문서일 뿐이며 유엔 차원에서 논의된 문서만이 공식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독일 DPA통신은 이번 초안이 덴마크 총리실에서 작성돼 공식적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