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도심 외곽의 고르부슈카 시장.

휴대전화와 TV, 최신 DVD 등 전자제품이 전시된 이곳에서 "데이터베이스"에 관해 문의하면 상인들은 이상한 제목들이 적힌 CD 목록을 보여준다.

이 목록에는 '내무부', '국세청', '마약단속국' 등의 제목이 적혀 있으며 이들 CD는 장당 10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해당 정부 부서의 기밀 정보가 들어있는 이 CD를 구입하면 개인의 주소, 계좌, 휴대전화 및 여권 번호, 체포 기록 등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러시아 정부의 기밀 정보가 암시장에서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넷판이 24일 보도했다.

정부 기밀 정보의 유통은 해커들이 정부 관리들로부터 기밀 정보를 구입해 이를 CD에 담아 대량 복사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기밀 정보가 거래되는 암시장의 규모는 수천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암시장에 관해 보도한 반정부 성향의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세르게이 카네프 기자는 "미국 기자들은 러시아의 정보 공개 수준에 대해 부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카네프 기자에 따르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기밀 정보는 주로 범죄에 활용된다.

성폭행이나 성매매 사건 기록을 활용, 여성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거나 마약 단속 기록을 확보한 뒤 경찰을 사칭해 마약을 흡입한 청소년의 부모에게 자녀를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식으로 범죄는 이뤄진다.

기자들도 암시장에서 판매되는 기밀 정보의 주요 고객에 속한다.

2006년 발생한 노바야 가제타 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암살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지난 2월 항공기 이용 기록을 토대로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청부 살인범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연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암시장에 나온 기밀 정보의 신뢰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들 정보의 대부분이 오래된 것이며 심지어 잘못됐거나 조작된 정보도 많다는 것.
더욱이 러시아 고위 관리의 해외 은행 계좌나 재산 내역 등 민감한 정보는 결코 암시장에서 구할 수 없다.

신뢰성 유무를 떠나 정보 통제가 심한 러시아에서 이 같은 암시장이 생겨난 것은 정보의 합법적인 유통을 차단한 채 대부분의 정보 유통을 불법화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