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책임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가 금융위기 발생 과정에서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는 17일 뉴욕 '디렉터십 매거진'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우리는 분명히 잘못된 일들에 참여했고 후회해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자본의 30배에 달하는 과도한 차입(레버리지)을 통해 거품 형성을 주도한 데 대한 잘못을 뒤늦게 반성한 셈이다.

블랭크페인 CEO는 금융위기 1년 만에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임직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주려는 것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을 의식,"우리 사업은 평판이 중요한 만큼 비판 여론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골드만삭스가 내놓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건설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회사가 올 들어 3분기까지 임직원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쌓아둔 자금은 167억달러에 달한다. 임직원 1인당 평균 52만7000달러(약 6억800만원) 이상씩 돌아갈 수 있는 돈이다. CNBC 등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고위 경영진들에게 이전에 비해 훨씬 적은 보수를 지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고급 인재들을 잃을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는 이와 함께 이미지 전환을 위해 주요 주주인 벅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과 함께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골드만삭스가 1만개의 소규모 사업체들에 대한 경영자문과 자금조달 등 다양한 지원 계획을 세우고 이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고 유력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총 자금 지원 규모는 5억달러로,소규모 사업체들의 고용을 촉진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이례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정부 정책에 부응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거액 보너스 지급 계획 등 경영 행태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 때 1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가 올해 이를 상환했다. 또 210억달러 규모의 장기채권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정부 보증 혜택도 받았다. 금융감독당국은 신용경색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때 골드만삭스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은행지주사 전환을 허용했다. 보험사인 AIG와의 거래로 천문학적 손실이 우려됐지만 역시 정부의 AIG 지원으로 AIG가 골드만삭스에 돈을 갚는 혜택도 입었다.

이에 앞서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 존 맥 모건스탠리 CEO는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차입이 있었던 데 대해 우리(투자은행)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앞으로 자본을 확충해도 더 이상 '빅 카지노'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씨티그룹의 비크람 팬디트 CEO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사 수장으로서 올해 연봉으로 1달러만 받고 주식 등 일체의 보너스도 받지 않기로 했다. 팬디트 CEO는 이사회에 회사 수익이 날 때까지 보너스 없이 1달러만 보수로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