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초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단기자본거래세,즉 '토빈세'를 제안한 것이다.

토빈세는 거시경제학의 거장이었던 미국의 제임스 토빈이 1970년대 제안한 것이다. 그는 국제적인 단기자본거래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세금을 매길 것을 주장했다. 토빈은 그렇게 하는 것이 투기를 억제하고 국내 거시경제정책의 운신 폭을 늘려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토빈의 아이디어는 그 후 시행되지 못했다. 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미국과 영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토빈세는 프랑스 같은 나라와 민간단체,그리고 일부 개도국이 주장하는 '비주류'견해가 됐다. 그러다 이번 위기 이후 영국의 금융감독청장인 아데어 터너 경(卿)이 그 필요성을 제기하더니,드디어 브라운 총리가 국제회의에서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역시 당장 미국 등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토빈세에 대한 반대 이유는 무엇보다 '낡은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시해 보지도 않은 아이디어를 낡았다고 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물론 단기자본 이동을 통제한 '낡은 경험'은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국경을 넘나드는 핫머니가 공황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단기자본 이동은 70년대 초까지 선진국에서도 제약을 받았다. 개도국에서는 물론 제약이 더 심했다. 그러다가 70년대 초 자유화가 시작된 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자유화가 가속됐다. 그 결과 이제는 하루에도 몇 조달러씩 국경을 넘어 단기자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 변화가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역사적 증거는 단기자본이동 자유화에 유리하지 않다. 45년 이후 70년대 초까지와 그 후 시기를 비교해 보면,외환위기 빈도는 70년대 초 이후 시기에 몇 배나 증가했다. 그렇다고 다른 측면에서의 성과가 나아진 것도 아니다. 45년부터 70년대 초까지는 역사상 세계 경제가 가장 빨리 성장하고 소득 분배도 비교적 평등했던 반면,그 후의 시기는 성장률도 떨어지고 분배도 악화됐다.

물론 70년대 초까지 시기에 터무니 없는 '과잉 규제'가 시행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토빈세가 그때의 과잉 규제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국제금융이라는 과속으로 돌아가는 바퀴에 모래를 뿌려서 조금 안정시키자는' 데 불과한 것이다.

토빈세에 대한 또 하나의 반대는 시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해 볼 생각도 않고 시행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행은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세율을 낮추고 탈세를 엄벌하면서 내부고발자 제도 같은 것을 활용하면 딱히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토빈세 말고도 더 나은 방안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브라운 총리도 자신의 다른 제안,예컨대 금융회사에 위기 시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감당하도록 보험을 들게 하는 방안 등을 더 강조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아 '가능한 모든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정답 아닌가.

토빈세의 장점은 세수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 주요국 정부가 모두 천문학적 채무를 지고 있는 상태에서 토빈세는 세원으로서도 결코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모든 외국인에게 입국세를 징수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 아닌가.

토빈세가 꼭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을 치유하는 방안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모처럼 영국 총리 같은 사람이 토빈세를 제안하게 된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한국의 경우 바로 다음 G20의 주최국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