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천성이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캐서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56).지난 주말 취임 1주년(9월23일) 인터뷰를 위해 대사관 집무실을 들어서자 벽 중앙에 걸린 포근한 수묵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30년 만에 예산중학교를 방문했을 때 제자들이 취임 기념으로 선물한 이 그림은 내 마음의 고향"이라며 활짝 웃었다.

'한국의 문화수준이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 문화수준은 1970년대에도 매우 높았다"며 감싸는 모습에선 한국이름(심은경)이 있는 최초의 미국 대사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진한 한국사랑이 느껴졌다.

▼취임 1주년 소감은.

"부임 당시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 직후여서 한국과 미국 모두 경제 문제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1년을 보내면서 한국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1970년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한국이 참 빨리 변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은 가난했지만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에 대한 열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진전은 30년 전 기대치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특히 내년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정된 건 하이라이트죠.한국이 국제무대의 중심국이 될 거라는 빠른 신호(early sign)로 해석됩니다. "

평화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외교관이 되겠다고 결심하셨다는데.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놓고 두 갈래로 분열된 상황이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제가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행을 택한 이유도 동아시아 정세에 관심이 높았던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깊습니다. 동아시아가 앞으로 미국에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를 것이란 걸 예감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가 다른 나라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그때 남자 중학교에서 근무했는데 교실당 70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교사들의 체벌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결정하는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동료 교사를 설득할 것인지,체벌이 이뤄지는 교무실을 박차고 나갈 것인지 등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정답은 없습니다. 외교의 원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각각의 상황과 목표에 따라 접근방식을 수정하는 게 외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궁합은 잘 맞다고 보시는지요.

"오바마 대통령은 첫 한국 방문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의 성과에 강한 존경심을 표시했습니다. 아직 이번 방한 기간에 무엇을 논의할지 확정되진 않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 대처와 G20 정상회의 한국 개최,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방안 등이 폭넓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도 돈독한 친분을 맺고 있으며 만남의 기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한 · 미 FTA가 협상 타결 2년째를 맞았는데도 별 진척이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방문때 '깜짝 소식'을 기대해도 될는지요.

"한 · 미 FTA가 타결된 뒤 양국 정권이 바뀌었고 금융위기가 터졌으며, 미국 자동차 산업은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미국 의회의 비준이 늦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미국 내에선 여전히 자동차 문제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하지만 올 1월부터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한덕수 주한 미 대사 등 관계자를 여러차례 만나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고 최근 USTR가 미국 모든 주의 업종별 단체와 주요 기업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물은 결과 대부분이 한 · 미 FTA에 동의했습니다. 금융위기로 미국 자동차 산업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지만 상대적으로 한국 자동차업계는 (미국 시장에서) 잘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한국 완성차 업체가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입니다. 양국 정상들이 중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만큼 정상회담에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워싱턴에선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과 김정일 사후 비상계획 등과 관련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요.

"지난 6월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남북화해 달성 목표를 공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등) 유사 상황에 대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교는 어디까지나 현재 벌어진 상황을 다루는 것이 최우선인 만큼 무엇보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복귀하고 9 · 19 공동성명(2005년)과 2 · 13 합의사항(2007년)을 지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6자회담은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건 북한 사회에도 엄청난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이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보십니까.

"1987년부터 2년간 부산의 주한 미 영사관에 근무할 당시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로부터 한국의 기업환경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한국의 경직된 관료주의와 의사결정 과정의 불투명성,외국계 기업 차별 등이 문제로 지적됐었죠.하지만 작년에 취임 후 암참(AMCHAM ·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등 미국계 기업 단체들과 만난 뒤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깜짝 놀랐습니다. 최근엔 미 기업인들의 불평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암참 연례행사에 참석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밝혀 글로벌 기업들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많이 변했죠."(웃음)

▼최근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 문제로 한국 내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최근 아프간 재건과 평화를 위해 민간인과 군병력을 추가 파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미국 정부는 한국의 결정을 환영합니다. 이미 40개국에 달하는 국가가 아프간 재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한국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길 바랍니다. 논쟁(debate) 역시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내에서도 아프간 문제를 놓고 활발한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결정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볼 것입니다. "

▼한국이 글로벌 중심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한국은 이미 미국 등 글로벌 무대에서 긍정적 이미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해외에선 한국의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적 성공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에 걸맞은 모범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G20 개최나 해외원조 등을 통해 국제 사회에 꾸준히 기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미희 기자/김병언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