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을 가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베를린 장벽보다 먼저 세워진 '냉전의 상징'은 아직 건재하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남.북한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온 비무장지대(DMZ)가 바로 그것.
폭 4㎞, 길이 250㎞의 DMZ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이후 50여년간 한반도의 갈등을 상징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진화했다고 미 CNN 인터넷판이 25일 보도했다.

MBC-TV 촬영팀이 최근 DMZ의 생태환경을 취재한 결과 늪지대와 숲, 산, 강, 해안지대까지 다양한 자연환경이 존재하는 DMZ가 희귀종의 보고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
동물학자이자 뉴질랜드 다큐멘터리 제작사 NHNZ의 프로듀서인 마크 스트릭슨은 "이곳(DMZ)이 매우 특별한 이유는, 한반도에서 찾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생물종이 존재한다는 점"이라고 극찬했다.

남북간 대치가 계속되는 동안 DMZ는 희귀종의 하나인 흰목 두루미의 겨울철 안식처가 됐고, 지구상에 2천500마리밖에 남지 않은 붉은 왕관 두루미의 1/3을 끌어들였다.

또 200여종의 조류와 고라니, 산양을 포함한 52종의 포유류 역시 DMZ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최근에는 군인들 사이에서 시베리아 호랑이와 표범을 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DMZ에 서식하는 이들 생물종은 사냥꾼의 총탄으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숲에서 뛰어나온 멧돼지가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기도 하고, 산양 두 마리가 철책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만 보기도 하는 등 DMZ의 생물들도 분단의 그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DMZ가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변신한 것과 관련, 비정부단체인 DMZ 포럼은 호랑이해인 내년에 호랑이 보호를 위한 남북 공동 연구를 지원하기로 했다.

DMZ 포럼의 공동설립자인 이승호 박사는 "포럼의 역할은 매우 중립적"이라면서 DMZ 포럼은 자연환경과 동물, 인권에만 초점을 맞춰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핵협상 등 정치적 이슈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연정 기자 rainmak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