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올리버 윌리엄슨 UC버클리 명예교수(77)는 13일(현지시간) "2차대전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가 빚어진 데에는 금융시스템 위험을 인지하고 줄일 수 있는 이론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경제학자,특히 금융경제학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금융위기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일차적인 책임은 금융감독당국에 있지만 금융시스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실증적인 이론이 없다면 감독당국도 특정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시행해야 할지 알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포함한 제도경제학자들이 거래 형태와 계약 기간에 따라 기업들이 거래비용(리스크)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를 규명했듯,금융학자들도 금융시스템에 내재된 위험과 복잡하고 예상하기 어려운 결과들을 인식할 수 있는 이론을 정립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조직경제학 측면에서 보면 금융감독당국은 물론 시장 참여자들 대부분이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많은 대출이 부실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자산담보부증권(CDO) 등 수많은 파생상품 관련 신용거래가 이뤄지면서 결국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윌리엄슨 교수는 "금융경제학자들이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적절한 이론을 통해 경고하지 않은 탓에 수많은 경제주체들이 위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과도한 차입 등 그릇된 경제행위를 되풀이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상환능력 이상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택을 사거나 소비를 한 사람들은 만기 때 빚을 갚기 어려워지면 다시 다른 금융사에 더 많은 돈을 빌리는 등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설명했다.

이는 거래비용 이론을 통해 조직(회사)의 미래위험을 따질 수 있는 잣대를 만든 학자로서 시장의 비합리성을 예견하지 못한 금융경제학계에 자성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또 금융위기 이후 논의되고 있는 감독기관 개혁에 대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재무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정부기관들에 어떤 권한을 주어야 하는지 논의하는 것 못지않게 각급 기관의 구체적인 작동방식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에서 기업 규제를 담당하면서 자신의 이론적 기틀을 닦은 경험을 근거로 무조건적인 정부 개입 확대 이전에 규제 방식에 대한 미시적인 논의를 강조한 것이다.

이어 회사 등 경제적 조직은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경영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윌리엄슨 교수는 국경과 업종 경계를 넘어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효율적인 구조를 갖춘 기업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평소 윌리엄슨 교수는 시장 경쟁이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자연 도태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유행하는 아웃소싱과 관련해 거래 상대방과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윌리엄슨 교수는 사업 성격에 따라 바람직한 조직 구조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어떤 지배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못박아 얘기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항공산업 같은 소수 기업이 독점하는 경우에는 아웃소싱을 강화하는 것보다 핵심 부품 생산을 회사 내에서 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분사했던 회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추가로 비용이 들어가는 결과가 빚어지면 이를 다시 통합할 정도로 유연하게 조직을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엔 "각종 사례연구를 통해 어떻게 하면 거래비용을 낮추고 효율적인 제도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를 연구해온 동료 교수와 제자들이 큰 보람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또 경제학자들은 미시적 방법을 동원해 사물의 핵심에 접근해 들어가야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