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여성 "폭력범죄에 절대 포기해선 안돼"

잠자리에 든 여아를 납치해 강제로 성폭행하고, 살해까지 기도했던 미국의 40대 남성 용의자가 최첨단 방식의 DNA분석을 통해 추적에 나선 경찰에 19년만에 붙잡혔다.

13일 미 CNN방송에 따르면 연방수사국(FBI) 텍사스 휴스턴 지부는 지난 1990년 당시 8살이던 제니퍼 슈에트 양을 납치, 성폭행한 뒤 증거인멸 등을 위해 살해까지 하려했던 데니스 얼 브래드포드(40) 용의자를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체포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용의자가 현장에 남긴 속옷과 셔츠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너무 샘플이 작아 규명에 실패했으나, 이번에 19년전 DNA 샘플을 최첨단 분석장비를 이용, 재분석해 용의자 검거에 성공했다.

용의자 브래드포드는 1996년 아칸소주에서 경찰에 검거된 적이 있으며, 당시 그의 DNA 샘플이 FBI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됐던 것이 이번 검거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됐다.

브래드포드는 사건이 일어났던 90년 여름 혼자 잠자리에 든 제니퍼의 침실에 창문을 통해 침입, 제니퍼 양을 납치했다.

용의자는 납치과정에서 제니퍼가 잠에서 깨자 자신을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경찰이라고 속이고 그녀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의 자동차 정비점으로 데려갔다.

브래드포드는 제니퍼에게 "저 달을 보렴. 달의 색깔이 바뀌면 네 엄마가 올거야"라고 안심시킨 뒤 "(달의 색깔이 안바뀌었으니) 엄마가 안 오려나보다"고 속인 뒤 학교 옆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으로 제니퍼를 데려가 성폭행했다.

제니퍼는 실신한 뒤 의식을 회복했으나, 몸은 벌거벗겨져 있었고 용의자가 휘두른 칼에 후두가 크게 손상된 상태였다.

제니퍼는 12시간 남짓 범행현장에 방치된 채 널브러져 있다가 극적으로 발견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성년이 된 제니퍼는 지난달 CNN방송에 출연, 자신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범인을 잡기 위해 매우 이례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면서까지 성폭행 상황을 증언했고, 이 방송출연이 범인검거에 큰 힘이 됐다.

방송에 출연한 제니퍼는 당시 의사들이 "너는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고 밝혔지만, 그녀는 건강을 회복한 것은 물론 치명적인 후두손상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는데 성공하는 등 남다른 의지력을 보여줬다.

그녀는 "나는 (사건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런 짓을 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기억하기를 늘 원했다"면서 "만약에 내가 이 일을 내 기억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면 경찰 수사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투사(fighter)'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이 문제는 나에게 국한된 게 아니라 밤에 잠자리에 드는 모든 어린 소녀들의 문제"라며 "난 수많은 여자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다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러분은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녀는 "나의 사건이 폭력 범죄의 희생자들에게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면서 "결단력과 분연히 일어서서 말할 수 있는 목소리만 있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