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등 신흥국과 개도국이 세계 경제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부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이들의 지분과 의결권이 선진국들과 맞먹는 수준으로 크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폐막한 제3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IMF와 세계은행의 지분과 의결권을 각각 2011년 1월,2010년 봄까지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IMF에서는 선진국들의 지분 최소 5%를,세계은행에서는 선진국들의 의결권 최소 3%를 신흥국과 개도국에 각각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IMF의 경우 막판까지 선진국들이 지분 이전을 거부하고 신흥국과 개도국들은 7% 양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팽팽히 맞서다 결국 5%로 합의했다. 세계은행은 선진국이 2%를 주장하고 신흥국과 개도국들은 6%를 주장했으나 3%로 절충했다.



IMF는 이로써 선진국과 신흥국 · 개도국 간 지분 구조가 종전의 57% 대 43%에서 52% 대 48%로 좁혀졌다. 이 같은 지분율 조정은 사상 최대다. 2006년 IMF는 한국 중국 멕시코 터키 4개국에 대해 전체 지분의 1.8%에 해당하는 지분을 상향 조정한 바 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8개국으로 이뤄진 주요 8개국(G8)의 2007년 현재 IMF 총 지분이 47.8%인 점과 비교하면 신흥국 · 개도국들도 대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현재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국내총생산(GDP) 비중과 IMF 지분을 비교하면 △중국은 6.4% 대 3.7% △브라질은 2.6% 대 1.4% △인도는 2.0% 대 1.9% △한국은 1.5% 대 1.3%였다. 그만큼 향후 추가 지분이 높아질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의 IMF 의결권 비중(현재 3.7%)이 영국(4.9%)과 프랑스(4.9%)를 제칠 것으로 내다봤다. 존 립스키 IMF 수석부총재는 "G8에서 G20으로 경제권력이 이동하는 것은 경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역동적인 주요 신흥국들 없이 협상 테이블에서 (세계 경제를) 논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이먼 존슨 미국 MIT대 교수도 "G8은 좀처럼 없애기 어려운 좀비와 같았다"며 "그들은 주로 정상회담 수준에서 빈번한 내부 접촉을 해왔지만 이제 그들은 사라졌다"고 단언했다.

이번 회의에서 또 IMF와 세계은행 총재 및 고위직 선출을 능력 위주로 임명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는 IMF 지분이 32.4%로 1위인 유럽연합(EU)이 IMF 총재를,IMF 지분이 17.1%로 2위인 미국(개별 국가 기준으로는 1위)이 세계은행 총재를 각각 지명해 이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 선출 방식 변화에 따라 앞으로는 신흥국 · 개도국에서도 IMF 총재와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정상들은 구체적인 출구 전략 방안과 이행 시기는 합의하지 않았다. "경기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안일해져서는 안 된다"며 "회복이 견고하고 확실해질 때까지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유지한다"고 약속했다. 출구 전략과 관련해서는 시기상조이나 사전 준비는 필요하다는 수준의 합의에 그쳤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