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텃밭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 동유럽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서유럽의 입김이 줄어든 틈을 타 동유럽 국가의 인프라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영향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23일 중국이 많은 빚에 시달리고 있는 동유럽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이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는 주로 자원 확보에 집중했지만 동유럽에서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겨냥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2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한 막대한 규모의 저리 대출과 초저가 입찰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중국의 스캐너업체인 누크테크는 3000만달러어치에 이르는 세관용 스캐너를 세르비아 정부에 납품하기로 했다. 이는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체결한 지 한 달도 안 돼 이뤄진 것이다. 누크테크는 후 주석의 큰아들인 후하이펑이 당서기로 있는 칭화홀딩스의 자회사다. 양국은 다뉴브강을 가로지르는 교량 건설 자금을 중국이 저리 대출하는 방안도 협상 중이다. 세르비아는 대만을,중국은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하는 데도 합의했다.

중국은 또 몰도바에 10억달러의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대가로 건설업체 코벡이 대규모 빌딩 건설 등을 맡기로 했다. 폴란드에서도 중국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코벡은 유럽 경쟁사들이 낸 입찰가보다 60% 낮은 가격인 ㎞당 6.3~6.5유로라는 저가에 두 건의 고속도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와도 집권당 간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중국의 행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있다. 독일 싱크탱크인 독일국제안보관계의 볼커 페르테스 소장은 "중국은 해당국에 개혁을 요구하는 일 없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처럼 동유럽의 적지 않은 국가들이 IMF 자금을 받는 대가로 혹독한 개혁을 요구받고 있지만 차이나 달러는 이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동유럽 국가들은 IMF 자금보다 중국 자금을 선호하게 되고,이는 IMF의 영향력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