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최대 개혁 과제로 추진해온 우정(郵政) 민영화 사업이 하토야마 내각에서 사실상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6일 출범한 민주당과 국민신당,사민당의 새 연립정권이 '자민당 흔적 지우기'의 가장 우선적 정책 행보로 우정 민영화의 전면 재검토를 택했기 때문이다.

우정 민영화는 고이즈미 전 총리가 정부 구조개편의 상징적 조치로 추진했다. 일본 최대 공공기관이던 우정공사를 분할해 민간에 완전 매각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2007년 10월 일본우정공사는 일본우정그룹이란 이름의 지주회사로 간판을 바꿔 달고,우편사업(배달업무 담당)과 우정국(창구업무) 유초은행(우편저금은행) 간포생명(우편보험회사) 등 4개 자회사로 분리됐다. 현재까지의 민영화 계획에 따르면 일본우정의 자회사들은 2011년까지 주식시장에 상장한 뒤 2017년까지 민간에 지분을 매각,완전 민영화할 방침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 같은 내용의 우정 민영화 공약을 통해 관료주의 타파와 수익성 제고를 외치며 2005년 중의원 선거 당시 '고이즈미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자민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한 조직에 있던 사업들을 4개 회사로 분할하고 나니 오히려 국민 불편만 커지고 운영비용만 더욱 올라갔다는 우정 민영화 회의론이 불거져 나왔다. 민영화가 끝나면 사업환경이 좋은 대도시 지역에만 양질의 우편 서비스가 몰릴 것이란 지방 유권자들의 불만도 터져나왔다.

이에 따라 지난 9일 마련된 3당 연립내각의 정책 합의안엔 "일본우정그룹의 주식 매각 동결 법안과 우정 민영화 재검토 기본법안을 조속히 마련해 처리한다"고 명시됐다. 특히 우정 · 금융상으로 임명된 가메이 시즈카 국민신당 대표는 "우정 민영화를 바로잡는 게 새 정치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라고 공표하면서 우정 민영화 계획의 백지화 가능성을 높였다. 21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가메이는 "능력만 있다면 관료 출신이든 민간 출신이든 누구나 일본우정 사장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해 민영화 재검토에서 정부 입김이 더욱 강해질 것이란 점도 시사했다.

우정그룹 재편의 구체적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다만 새 정책 합의안에서 "우정그룹에서 우편과 저금,보험의 통합서비스 제공을 검토한다"고 명시한 만큼 일본우정과 우편사업,우정국회사를 합치고 그 산하에 은행과 보험을 두는 방안이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사업을 주도할 후임 사장에 대한 하마평도 나오고 있다. 하토야마 내각은 우정 민영화 작업을 지휘해온 니시카와 요시후미 현 일본우정 사장에 대해 자산 헐값 매각 등의 물의를 일으켰던 책임을 물어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민주당의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측근인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하토야마 유키오 신임 총리와 가까운 데라시마 지쓰로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 소장 등의 이름이 오르고 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