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한 일본대사관이 바빠졌다고 한다.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부 출범을 전후해 한국의 '노무현 정부' 사례 분석에 분주하다는 게 관계자 전언이다. 일본대사관이 노무현 정부 분석에 나선 건 '하토야마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닮았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제기된 탓이다. 두 정부의 정치 경제 외교 등 대부분 정책 방향이 묘하게도 일치한다는 게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등 한국을 잘 아는 일본 지식인들의 견해다.

따져보면 하토야마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정말 닮았다. 첫째 포퓰리즘 정책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선거공약으로 자녀수당 신설,고교 무상화,고속도로 무료화 등을 내걸었다. 성장보다는 복지 우선의 직접적 분배 정책들이다. 상당수 유권자가 경제논리를 무시한 이 달콤한 공약에 끌렸던 게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때도 포퓰리즘 논란이 많았다. 당시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해 '부자 때리기'에 나서면서 서민 복지와 분배정책을 강화했던 게 그렇다.

둘째 친노조 성향이다. 하토야마 정부의 유력 지지기반이 노조라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집무 첫날 일본 최대 노조단체인 렌고 회장단을 만났다. 재계단체인 게이단렌 회장의 면담 신청은 거절했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파격적으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직접 방문했던 장면과 유사하다. 노무현 정부도 노조와 가까웠지만 재계와는 긴장 관계였다.

셋째 미국과 거리를 두려는 외교다. 하토야마 총리는 총선 직전 '나의 정치철학'이란 언론 기고문에서 미국의 글로벌리즘과 시장원리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대등한 미 · 일 관계'를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 반미면 어떠냐"고 역설했던 게 생각나는 대목이다. 하토야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1960년 미국과 맺었던 소위 '핵 밀약'을 조사해 공개하겠다고 나선 점은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를 떠오르게 한다.

하토야마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닮은 데는 까닭이 있다. 둘 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직전은 같은 뿌리인 김대중 정부였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IMF(국제통화기금)가 강제한 글로벌스탠더드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토야마 정부 등장의 밑거름이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우정민영화 규제완화 등 구조개혁 노선도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의 살벌한 경쟁,그로 인한 양극화에 지친 국민들이 대안으로 선택한 게 바로 노무현 정부와 하토야마 정부다. 이렇게 태생의 배경이 같다 보니 국민들에게 내놓은 정책방향도 같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두 정부의 결과도 같을 것이냐다.

노무현 정부는 실패했다. 역사적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다음 대선에서 여당이 크게 패해 정권을 빼앗겼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실패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분배 우선의 포퓰리즘 정책이 성장의 발목을 잡아 양극화가 더 심해졌고,아마추어리즘으로 상징되는 무능이 실정으로 이어져 국민들을 더 힘들게 했던 게 핵심 요인이 아닌가 싶다.

하토야마 정부는 과연 어떨까.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아니면 노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성공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앞으로 흥미롭게 지켜볼 포인트다.

도쿄=차병석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