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력없어 실효 약하나 심리적 압박
아랍권, 개도국 견인 성공..이란엔 `양날의 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8일 이스라엘의 핵능력을 우려하는 결의를 채택한 것은 이스라엘 뿐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들이 외교적 패배를 당했음을 뜻한다.

IAEA가 핵문제와 관련해 이스라엘을 적시해서 비난하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한 것은 18년 만의 일이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보유와 관련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이른바 'NCND'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이후부터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 지고 있다.

미국 과학자연맹 `한스 크리스텐슨' 등 3개 기관이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지난 1일 현재 80기의 전략 핵무기를 보유, 러시아, 미국, 프랑스, 중국, 영국에 이어 세계 6위에 올라 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인도 및 파키스탄 등과 함께, 핵무기 보유 내지 보유 추정 국가 가운데 핵무기 비확산 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은 몇 안되는 나라다.

따라서 IAEA의 사찰도 매우 제한적으로 받고 있다.

반면 아랍권 국가들은 아직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없지만 모두 NPT에 가입해 있다.

IAEA는 지난 1991년 핵무기와 관련해 이스라엘을 강력 비난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그 이후 이슬람권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NPT 가입과 IAEA사찰 수용 등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매년 채택시키려 시도했으나 지난 18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뤄진 일이 없다.

미국 등 서방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미국 등은 "이스라엘을 적시해 비난하고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중동평화를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아울러 강력한 외교력으로 다른 회원국들을 설득, IAEA 이사회에서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선 "논의는 하되 결의는 안하는" `관행'을 유지시켜 왔다.

그러나 이 `관행'이 18년 만에 깨졌다.

우선은 아랍권이 일치단결했기 때문이다.

아랍 국가들은 그동안 줄기차게 이스라엘 핵 프로그램을 비난하는 결의안 채택을 시도했지만 서방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자 이번 회의를 앞두고 개발도상국들은 물론 유럽연합(EU)을 상대로도 로비를 벌여 왔다.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EU 순회의장국인 스웨덴의 카를 빌트 외무장관에게 최근 서신을 보내 이스라엘의 핵 프로그램 공개에 대한 아랍연맹의 결의안을 지지해 달라고 촉구했다.

결정적인 것은 여기에 개도국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개도국들이 돌아선 이유는 미국 등 서방이 아랍권 등에 대해 이스라엘과는 다른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시각 때문 만은 아니다.

미국 등 핵강국들이 핵무기 감축을 거부하면서 개발도상국들의 평화로운 원자력 기술까지 가로막고 있다는 불만이 더 큰 이유로 작용했다.

이번 결의는 18년 만에 채택됐다는 점 뿐아니라 내용도 강력하다.

결의는 "이스라엘의 핵능력과 이로 인한 중동 안보 및 안정에 대한 위협"을 우려하고 이스라엘에 핵무기 비확산 조약(NPT) 가입과 모든 핵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 핵무기 폐기를 위한 실질적 조치의 실행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로써 이스라엘과 미국 등 서방 강대국은 외교적 패배를 당하며 체면에 손상을 입게 됐다.

특히 이스라엘로서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축으로 중동평화를 정착시키려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정착촌 건설을 강행, 서방과 갈등하는 상황이어서 더욱 수세에 몰리게 됐다.

반면 아랍권은 오랜 노력으로 성공을 거뒀다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란으로선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이란은 이 결의와 별개로 민간핵시설을 공격.위협하는 것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 및 IAEA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스라엘을 간접 지칭한 이 결의안은 서방의 반대로 표결에 부쳐지지 못했다.

그러나 구속력이 없는 의견으로 기록되도록 동의를 얻는데는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나 시리아 등 중동 다른 국가들의 핵 개발 시도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실력 행사도 서슴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1981년 6월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전을 폭파한 데 이어 2007년 9월에는 시리아의 동북부 사막에 있는 핵시설로 의심되는 건물을 기습 공격했다.

또 서방 국가들이 연말까지 이란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합의하지 못한다면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그러나 이번 결의가 심리적 압박감 이상으로 이스라엘과 서방의 핵정책에 실질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법적 구속력 문제 이전에 이스라엘과 서방이 이를 수용하지 않아도 아랍권이나 결의에 찬성한 개도국들이 성토 외에 별다른 강제력을 구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대니얼리 이스라엘 IAEA대표는 표결 후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특정하는 것은 이 지역의 신뢰 구축과 평화에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유감을 표시한 뒤 "결의안과 관련한 어떤 문제에도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결의안이 이란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간 아랍권은 "이스라엘의 핵 개발은 묵인하면서 왜 이란은 제재하는가"라며 형평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러나 핵 개발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을 땐 이스라엘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결의안을 채택할 수 있다는 예를 제시함으로써 이란 또한 더욱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이란과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주요 6개국은 다음 달 1일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핵 협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주요 6개국은 이란이 핵 무기 제조에 악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작업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더욱 혹독한 제재를 부가할 수 있다고 주장해 온 만큼 협상 결렬시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