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아침 도쿄 시내 후생노동성에 첫 출근하는 나가쓰마 아키라 신임 장관(49)은 비장한 표정이었다. 청사 현관을 들어서자 50여명의 후생노동성 간부들이 좌우로 도열해 그를 맞았다. 하지만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일본에선 신임 장관이 첫 출근을 하면 현관에서 간부들이 박수를 치며 맞는 게 관례다. 나가쓰마 후생상은 간부들과 악수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나가쓰마 후생상은 지난달 말 총선 직후 당선 일성으로 "가스미가세키(도쿄 중심부의 일본 관청가 이름으로 관료집단을 지칭)를 대청소해 묵은 고름을 모두 짜내겠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가스미가세키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관료 개혁'을 공언한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마침내 관료집단에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16일 밤 출범한 하토야마 내각은 첫날부터 관료들의 손발을 묶고,사정없이 몰아쳤다. 관료집단은 초긴장 상태에서 일단 엎드려 있다. 그러나 언제 반격을 할지 모르는 형국이다.

◆'정치인 주도 정치'시동

총리관저는 16일 각 성 · 청에 시달한 '정(政)과 관(官)의 역할'이란 지침에서 '부처의 견해를 밝히는 기자회견은 각료 등 정치인만 할 수 있으며,관료는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각 부처의 사무차관이 해오던 정례 기자회견도 중단하라고 못박았다. 다만 장관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관료가 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토야마 내각이 관료의 회견을 차단한 것은 공약으로 제시한 '탈관료,정치인 주도 정치'의 첫 조치다. 과거 관료들이 장관을 제치고 언론과 소통하면서 부처 이기주의와 정책 혼선을 키웠다는 게 민주당의 시각이다. 하지만 언론계에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회의원도 만나선 안돼"

총리관저는 또 관료들의 행동반경도 제한했다. 각 부처의 각료와 부대신 정무관 등 정치인 이외의 관료들은 국회의원과의 접촉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법안 작성이나 정책 입안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관료에게 구체적인 면담 또는 자료를 요청할 경우 반드시 각료에게 내용을 보고토록 했다. 관료가 정책 등과 관련,국회의원이나 다른 정치인에게 접근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의원이나 의원비서가 보조금이나 교부금 인허가 계약 등과 관련해 요청이 있을 경우 기록으로 작성해 보관한 뒤 정보를 공개토록 했다. 정치인이 관료에게 접근해 청탁하거나,관료가 정치인을 상대로 정책 로비를 벌이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자는 의도다.

◆사무차관회의는 폐지

관료정치의 상징이었던 내각 사무차관회의는 123년 만에 폐지됐다. 사무차관회의는 일본에서 내각제도가 확립된 다음 해인 1886년 시작돼 지금까지 정책 결정의 핵심 기구였다. 그러나 민주당의 공약에 따라 지난 14일 자민당 정권에서 마지막 회의를 갖고 사라졌다. 사무차관회의의 법적 근거는 없었지만 장관들의 회의인 정례 각의 하루 전 열려 안건을 모두 심의하고 사실상 결론을 냈다. 여기서 조정되지 않은 안건은 각의에 올라가지 못했다.

일련의 조치는 '관료는 앞으로 머리가 아니라 손발 역할만 하라'는 분명한 메시지로 일본 관가는 받아들이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