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車부품, '난공불락' 도요타 벽 뚫는다
KOTRA의 정혁 나고야 센터장(50)은 지난해 초 일본 도요타자동차 본사에서 당했던 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한국 자동차 부품의 수출 길을 뚫기 위해 국내 유수 부품업체의 제품 설명서를 한 꾸러미 들고 도요타를 찾아갔다. 회의실에서 만난 도요타 구매담당자는 설명서의 첫 페이지를 넘겨 힐끔 보더니 더이상 볼 필요도 없다는 듯 덮었다. "이런 기술은 필요없다"는 차가운 한마디에 정 센터장은 서류를 챙겨들고 나와야 했다.

◆외국부품업체 초청 첫 전시상담 개최

그러던 도요타가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10일 한국의 LG이노텍,신성델타테크 등 자동차 부품회사 39곳을 도요타시 본사로 초청,전시상담회를 열고 부품 구매를 타진했다. 11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이번 상담회엔 도요타 본사 구매팀은 물론 1차 협력업체 500개사의 약 20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도요타의 도요다 쇼이치로 명예회장,조 후지오 회장 등 최고경영진도 전시장을 직접 둘러볼 계획이다. '그냥 한번 보자'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도요타가 이렇게 외국 부품업체들을 본사로 불러 전시상담회를 열기는 처음이다. 지난해 사상 첫 영업적자를 낸 뒤 대대적인 비용절감에 나선 도요타가 부품 해외 조달을 추진하며 한국 기업에 첫 노크를 한 것이다. 수많은 세계 기업중에 도요타는 왜 그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한국 기업을 선택한 것일까.
한국 車부품, '난공불락' 도요타 벽 뚫는다

기술과 가격 경쟁력이 모두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도요타와 꾸준히 접촉해 이번 행사를 성사시킨 정 센터장은 "도요타 입장에선 기술력과 품질이 뒷받침되면서 가격은 일본 기업보다 싼 곳을 찾다 보니 한국 기업이 대안이 된 것 같다"며 "기술은 중국보다 뛰어나고 가격은 일본보다 싼 소위 '역 샌드위치' 효과가 나타난 셈"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은 거리도 가까워 도요타의 재고 없는 생산방식인 JIT(Just in time · 부품 적기생산체제)에 적합하다는 것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전기차 개발단계부터 참여시킨다

도요타는 이번 상담회에 참가한 39개사를 정밀 심사해 최종적으로 납품 업체를 선정하면 지속적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전기자동차 등 차세대 모델을 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참여시킬 예정이다. 때문에 초청 기업도 현대하이스코 등 대기업 계열 7개사 외에 전투기용 브레이크 업체인 테크,월드컵 축구공에 들어가는 합성피혁 메이커인 덕성PTT 등 독특한 신기술과 신공법을 보유한 32개 중소기업들로 한정했다.

한국 기업들이 도요타에 납품하게 되면 일본 자동차부품 시장 진출에 큰 전기가 될 전망이다. 한국 자동차 부품업계는 제너럴모터스(GM),포드 등 미국 업체는 물론 메르세데스 벤츠,BMW 등 유럽 기업에도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일본 자동차 업체엔 납품 실적이 거의 없다. 특히 철저한 품질관리로 유명한 도요타는 납품업체 선정기준이 워낙 까다로워 한국 부품업체들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도요타는 이날 전시상담회에 대한 한국 언론의 취재 요청을 사양하고 행사 자체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자동차 생산 감축으로 일본내 2,3차 부품기업들이 문을 닫고 있는 마당에 한국으로 부품 조달처를 돌리려는 시도가 자칫 자국 협력기업들을 자극할 수도 있어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