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30 총선에 압승해 역사적 정권 교체가 결정된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당사로 출근해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해명'부터 했다. "결코 반미적 생각을 담은 게 아니다. 글 전체를 읽어보면 안다. " 지난달 27일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기고문에서 미국 주도의 글로벌리즘과 시장원리주의를 강하게 비난하고,아시아 중심의 경제체제 구축을 주장한 게 '반미주의'라는 지적을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외교전문가들은 "글을 다 읽어봐도 반미적 색채가 분명하다"며 비판했다. 하토야마의 민주당이 '일본의 새로운 출발'에 시동을 걸기도 전에 여기저기 암초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외교노선 전환엔 반미주의란 비판이,행정 개혁엔 관료들의 반발이,경제정책 수정엔 재원 확보 문제가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민주당 정권이 이런 복병들을 어떻게 넘느냐가 개혁 성공을 좌우할 전망이다.

◆벌써부터 거세진 '반미 색채' 공격

차기 총리가 확실한 민주당의 하토야마 대표가 첫 번째 넘어야 할 산은 '반미' 우려의 불식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의 바탕이 된 '나의 정치철학'이란 논문에서 "일본은 미국발 글로벌리즘이라는 시장원리주의에 농락당했다"며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도 미국의 시장원리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파탄이 초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보 전략은 미 · 일 동맹이 근간이라면서도 "미국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수 측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다. 오카모토 유키오 외교평론가는 "하토야마 대표만큼 미국을 비판하는 국가지도자는 이란이나 베네수엘라 대통령밖에 없다"며 "특히 '일본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떻게 독립을 유지할까'라고 쓴 것은 미국이 일본의 동맹국이란 사실을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무성 관계자도 "자민당이 한때 정권을 놓쳤던 1993년 호소카와 내각 때 미국과 관계가 서먹해져 그걸 복구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며 "대미외교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야당이 된 자민당이 극우파 의원을 중심으로 '현실론'을 내세워 외교 · 안보정책을 물고 늘어지면 민주당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민주당은 국정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데다 당내에 외교전문가도 거의 없다.


◆공약 재원 나올 데 없어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생활 지원'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일본의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달할 정도로 재정이 심각한 적자 상태여서다. 민주당은 선거에서 △자녀 1인당 중학생까지 월 2만6000엔(약 34만원) 지급 △고교 무상화 △고속도로 무료화 등 인기 공약을 쏟아냈다. 이 공약을 모두 지키려면 2013년까지 16조8000억엔(약 220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일본 정부 예산(207조엔)의 8%를 넘는 규모다. 민주당은 이 돈을 낭비 예산 절감(9조1000억엔),국유자산 매각(5조엔),조세 감면 축소(2조7000억엔) 등으로 조달하겠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세금을 올리지 않고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 해결한다는 것.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예산 절감의 타깃인 공공사업비는 고이즈미 내각 때부터 계속 줄여 더 줄일 것도 없는 상황이다. 공무원 임금 삭감은 민주당 지지세력인 공무원노조가 반대할 게 뻔하다. 민주당이 과감히 줄이겠다는 정부보조금도 노인간호나 생활보호 등 대부분 복지비용이어서 감축 여지가 많지 않다. 결국 공약 이행을 위해선 국채를 더 발행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재정 파탄이 우려된다.

◆관료집단은 사보타주할 수도

관료 개혁에도 난관이 많다. 관료조직은 50년 이상 쥐고 있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버틸 게 분명하다. 특히 관료들은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데다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정권이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게 관료들의 사보타주(태업)다. 관료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겨 결국은 개혁을 포기하고 관료들과 타협하는 게 일반적 사례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총무상을 지낸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는 "관료를 개혁하려면 관료보다 더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현재 민주당에는 그런 전문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