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택시기사들의 고령화가 눈에 띈다.

"젊었을 때 중동건설에서 벌어온 돈으로 부동산 투자를 해 노후 자금을 다 벌어놨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기대지 못하고 노후를 불안하게 보내는 이들이 많아.한국이 일본과 똑같은 길을 걷는 것 같아".

언젠가 이처럼 말하는 한 택시 운전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이 일본을 보며 꼭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의 제 45대 중의원선거는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민주당은 이른바 '절대안정다수'(국회 전체 상임위원회에서 위원장 자리를 독점할 수 있으며 위원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는 의석 수 269의석)를 훨씬 상회하는 308의석을 단독으로 획득했다. 반면 자민당은 1955년 창당이래 지켜온 제 1당의 자리를 넘겨줬다. 중의원선거가 정권교체로 이어진 사례는 전후 두 번 정도 있었으나 기간은 모두 짧았다. 일본인들은 처음으로 연립,혹은 고이즈미 정권과 같은 자민당 내 반란이 아닌 '근본적'인 정권교체의 길을 선택했다. 민주당이 내세운 공약은 △경제재건 △관료정치 타파 △미국과의 관계 유지 등이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선 자민당 보수정치가들에 의해 불거졌던 역사문제 마찰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총선 투표율이 69%로 과거 최고라고 말하지만 2005년의 67%보다 조금 높을 뿐이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대비 170%인 상황에서 4년이나 소비세를 올리지 않고,중학교 졸업 때까지 아이 한 명당 월 2만6000엔(약 34만원)을 지급하며,공립고교 무상화에 농가소득을 보전하겠다는 등의 말을 쏟아내는 정권을 믿을 국민은 없다. 의식 있는 일본의 유권자들은 자민당 정치의 파탄을 분명히 따지며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시켜보겠다"는 선택을 했다.

민주당도 자민당 출신과 우파에서 좌파까지 껴안고 있는 다양한 집단이다. 어디까지 '근본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는지는 미지수다. 역사인식 등에 대한 높은 기대는 역으로 실망을 가져올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저출산 ·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은 세 가지 점에서 대통령제의 '정치 다이너미즘(Dynamism)'에 다음과 같은 일본의 교훈을 반영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첫째, 고령화가 진행하면서 세대 간 기득권 조정은 막대한 정치 자금을 필요로 한다. 일인 일표제에서 정치가는 젊은 층보다는 압도적으로 투표율이 높은 고령자에게 관심을 갖는다. 얼마 전까지 고성장회귀만이 관심이었던 한국에서도 '베이비 붐' 세대가 최근 5년간 일선에서 은퇴하면서 정부가 이들을 위한 고령자복지와 자산운용기회의 안정성을 진지하게 재설계할 수밖에 없게 됐다.

둘째, 출생률 저하를 반전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고령출산이 가능한 시대이지만 인구동태를 바꾸는 수준의 출생률 상승은 30대 인구층에 기대를 걸 만하다. 그러나 그 30대의 고용이 불안정하고 인생 설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자녀를 갖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고령자 정책과 함께 저출산에 대한 집중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저출산 · 고령화 정책에 소극적인 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다. 노동자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유럽국가들과 미국에서조차 고용사정이 호전되지 않는 이상 정치는 연금과 의료개혁 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자유무역 추진은 올바른 정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대국의 관심이 없고 비준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 경제정책으로서의 의미는 퇴색된다. 한국도 내수가 활발하지 않다는 점에서 일본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오직 수출만이 살 길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내수와 고용의 상승효과를 모색해야 하는 전환기가 왔다고 할 수 있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