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지위협정 개정 착수에서 개정 제기로"

새로 출범할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의 대미외교 정책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애초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발표한 정권공약에서 주일 미군의 지위와 관련된 미·일 지위협정에 대해 "개정에 착수한다"고 명시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민당 등이 이에 대해 "외교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등의 비판을 제기하자 "개정을 제기한다"라고 한발짝 물러섰던 것이다.

우선 민주당은 미국 외교의 기본을 '긴밀하고 대등한 미일동맹 관계'로 정했다.

자민당이 '미일동맹 강화'를 내걸었던 것에 비하면 '대등한' 외교 쪽이 두드러져 보인다.

하토야마 대표도 "대미 의존이 아니고 보다 자립적인 외교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왔다.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지위협정 개정 문제 제기 자체도 자민당 정권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그동안 일본 내에서 주일 미군에 의한 범죄가 종종 발생했지만, 자민당은 협정 개정보다는 운용 개선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민주당은 자민당 정권에서 미·일 간 합의한 주일미군 재편 문제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오키나와(沖繩)에 있는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에 대해서도 기존 합의와 달리 오키나와현 이외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또 미국과 일본 정부간 핵을 적재한 미국 함선이나 항공기의 일본 기항시 사전에 협의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밀약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자민당 정권에서는 밀약 자체의 존재를 부정해 왔다.

미국의 입장에서 민주당의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골치 아플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미 미국측에서는 하토야마 대표가 선거 기간 뉴욕타임스 등의 기고를 통해 미국 중심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동아시아 공동체 등을 주창한데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민주당과 하토야마 대표의 대미정책 기조가 새 정부 출범 이후에 그대로 적용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정권 공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외교 전문가가 부족한 민주당으로서는 정권 출범 이후 하토야마 차기 총리가 실제 외교 무대에 데뷔하면 현실론으로 쏠릴 수 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민주당 내에서는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당내에서 "외교의 경우 상대가 있는 만큼 국제 역학 등을 고려해야 하고, 상대방의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도 "미·일 관계는 우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신뢰관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당장 하토야마 대표는 내달 15일께 특별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된 이후 곧바로 유엔총회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및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도 만나는 등 외교 무대에 첫 데뷔하는 것이다.

물론 짧은 일정인 만큼 이 자리는 그는 이들 국가 정상들과 상견례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하토야마 정부의 대미외교의 향배를 점칠 수 있는 최초의 시험대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 및 정상회담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이 내걸었던 미일 지위협정이나 주일미군 재편 문제에 대해 하토야마 차기 총리가 강력하게 이의제기를 할 경우엔 양국 간의 관계가 이상 국면으로 향할 수도 있다.

또 내년 1월로 예정된 해상자위대의 인도양에서의 다국적군 함대에 대한 급유지원 활동 기한 만료 이후의 민주당 정권의 대응도 관심사다.

하토야마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정권교체를 한다고 해도 당장 이런 활동을 중단하지는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향후 상황에 따라서는 민주당이 이의 연장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릿쿄(立敎)대 법학과 이종원 교수는 "대미관계는 금방 성과가 나오는 성질이 아닌 만큼 민주당은 이보다는 단기간에 눈에 드러나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아시아 외교를 개선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외교적 기반을 다지고 나서 중장기적으로 대미외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choina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