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11구에 출마했던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56 · 8선)은 30일 밤 총선 개표 결과 30대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이 확정되자 지역구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일부 여성 지지자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그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올초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술에 취한 채 '졸음 기자회견'을 했던 그는 낙선이 진작부터 예상됐었다.

8 · 30 일본 총선거에서 '정권교체'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자민당의 전 · 현직 총리와 각료 등 거물들이 지역구에서 줄줄이 낙선했다. 특히 민주당의 젊은 '미녀 자객'을 상대 후보로 맞은 원로들이 고배를 많이 마셨다. 지역구에서 낙선한 거물 중 일부는 비례대표로도 중복 출마해 '부활' 당선될 전망이다. 하지만 지역구에서 패배한 거물들은 당내 영향력이 크게 축소될 게 뻔하다.

총 16선으로 일본의 현역 의원 중에선 최장인 49년간 의원을 지낸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78)는 민주당의 신진 후보에 뒤져 낙선했다. 그는 선거기간 중에도 "이렇게 힘든 선거는 처음"이라고 실토했다. 그는 비례대표에 중복 출마하지 않아 반세기 동안 달고 다니던 의원 배지를 반납하게 됐다. 자민당에서 전직 총리가 낙선한 것은 1963년 이시바시 단잔이 유일한 사례였다.

또 공동 여당인 공명당의 오타 아키히로 대표(63 · 5선)도 민주당의 '미녀 자객' 아오키 아이 참의원 의원(43)에게 무릎을 꿇었다. 현직 각료 중에선 아소 정부의 2인자인 요사노 가오루 재무상(71 · 9선)이 낙선했다. 일본의 정치1번지 도쿄1구에 출마한 그는 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 전 의원(60)에게 패배했다. 5선 의원으로 최초의 여성 총리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노다 세이코 소비자담당상도 지역구에서 낙선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로 민주당 바람이 거셌던 홋카이도 5구에서는 자민당 최대 파벌 마치무라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64 · 8선)이 고배를 마셨다. 그는 민주당이 투입한 미녀자객 고바야시 치요미 전 의원(40)에게 무너졌다. 그러나 비례대표로 겨우 부활 당선됐다. 9선의 나카가와 히데나오 전 간사장(65)도 민주당 신인 후보에게 졌다. 자민당의 규마 후미오 전 방위상(68)은 나가사키2구에서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민주당의 후쿠다 에리코 후보(29)에게 패했다. 후쿠다 후보는 혈액제 감염 문제를 이슈로 자민당 정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명해진 여성이다.

자민당 왕국으로 불렸던 군마현 군마1구에 출마한 8선의 오미 코지 전 재무상(76)도 신문기자 출신의 민주당 신진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소 총리와 겨뤘던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57 · 5선)도 도쿄10구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2005년 선거 때 대표적 '여성 자객'이었던 고이케 전 방위상은 에바타 다카코 전 도쿄대 특임교수(여 · 49)를 '역자객'으로 만났다. TV방송 아나운서 출신으로 대중적 인기도 있었던 고이케 전 방위상의 낙선은 자민당도 충격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반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으로 출마한 고이즈미 신지로 후보는 민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미녀 자객을 만나 고전했던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와 모리 요시로 전 총리도 근소한 표차이지만 당선돼 체면을 차렸다. 자민당 관계자는 "거물들이 대거 빠진 자민당이 앞으로 야당으로서 어떻게 버텨나갈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