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오타구에서 금속가공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미네 사토루 사장(68)은 30일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30대 여성 신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평생 자민당에만 투표해 왔지만 이번엔 마음을 바꿨다. "지난해 가을 이후 매출이 40% 줄었다. 50년간 사업했지만 '최악'이다. 정부는 경기부양에 엄청난 돈을 썼다지만 효과가 없다. 이젠 더이상 자민당을 믿을 수 없다. " 니혼대학교 경제학부 4학년인 야수자와 기이치씨(23)도 처음으로 투표에 참가했다. "그동안 정치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이 막막한 현실이 비효율적인 정치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

일본의 8 · 30 총선은 불만에 찬 민심의 분화구였다. 쌓이고 쌓였던 정부 · 여당에 대한 불만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특히 1989년 이후 출생한 헤이세이세대가 대거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변화의 바람을 이끌었다. 지난 54년간 일본을 지배해온 자민당 정권은 패배가 확실시된다. 야당인 민주당은 '정권교체' 바람을 등에 업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전망이다. 사실상 반세기 만의 여야 정권교체다.

◆최악 실업난에 대책은 헛발질

이번 총선은 '만년 여당' 자민당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했다. 야당인 민주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자민당이 못마땅해 일본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일본 국민들은 왜 자민당에 등을 돌렸을까. 전문가들은 경기악화를 가장 큰 배경으로 꼽는다.

김숙현 도호쿠대 법학부 교수는 "원래 보수적인 일본 국민들의 마음이 자민당을 떠난 건 경제사정이 나빠진 게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의 7월 중 실업률은 5.7%로 관련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53년 4월 이후 최악이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때보다 심각하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생활이 빈곤해지고 있다'는 일본인의 응답비율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57%에 달했다. 이 역시 1953년 조사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경기대책은 헛발질이었다. 다나카 나오키 국제공공정책연구센터 이사장은 "일본은 돈은 돈대로 쏟아붓고도 전 국민에 대한 현금 지급 등 효과가 별로 없는 데 쓰는 바람에 선진국 중 경기회복이 가장 늦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민당은 국민들에게 비전과 희망이 아니라 구태정치만 보여주자 '못 살겠다. 바꿔보자'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김숙현 교수는 "국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자민당 정권은 총리직을 세습 정치인인 아베 신조,후쿠다 야스오,아소 다로씨가 돌아가며 맡다가 무책임하게 내팽개쳤다"며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 행태에 일본 국민들이 화가 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5000여만건의 납부 기록이 사라질 정도의 부실한 연금 관리 △올초 나카가와 쇼이치 재무상의 로마 '음주 회견' △아소 총리의 잇단 실언 등 최근 2~3년간 속출한 악재는 민심 이반을 재촉했다.

◆시대변화로 자민당 존립기반 약해져

자민당의 몰락은 이미 20년 전부터 예고됐다는 지적도 있다. 1955년 이후 자민당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대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동서냉전과 고도 경제성장이다. 냉전체제 아래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경제성장에 전념한다는 게 자민당 정권의 존재 이유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냉전은 끝나고,국내적으론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자민당의 존립기반이 사라졌다.

이는 자민당 지지층의 이탈로 나타났다. 자민당 당원 수는 1991년 546만명에서 2007년 110만명으로 5분의 1로 줄었다. 전통적 지지기반인 의사회와 건설업단체 등이 최근 하나둘씩 떨어져 나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민당의 몰락은 전통적인 텃밭에서 전직 총리들까지 고전하는 기현상을 연출했다. 자민당 선거대책본부장 대리인 고가 마코토 의원(69 · 9선)은 지난 29일 자정까지 후쿠오카 지역구의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한 표를 호소했다. 민주당의 50대 신진 후보에 밀린다는 여론 조사 결과에 자신의 지역구 거리유세에 13년만에 다시 나선 것이다.

이번 총선은 자민당 거물들에겐 정말 힘든 선거였다. 민주당이 전직 총리와 각료,당 간부 등 거물들의 지역구에 미모의 젊은 여성 후보들을 집중적으로 공천해 '자객'으로 내려 보냈기 때문이다. 실제 자민당의 전직 총리들이 줄줄이 낙선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73)는 선친 때부터 지켜온 텃밭인 군마현에서 민주당의 후지TV 여기자 출신 미야케 유키코 후보(44)에게 고전했다. 군마현은 자민당 텃밭으로 '보수왕국'으로 불린다.

총 16선으로 일본의 현역 의원 중에선 최장인 49년간 의원을 지낸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78)가 "이번만큼 힘든 선거는 처음이다. 솔직히 힘이 달렸다"고 토로할 정도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