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이슬람교도의 성스러운 달(聖月)'인 라마단이 시작된 지 1주일이 지났다. 무슬림은 이슬람력의 9번째 달인 라마단 기간 중 낮에는 코란(이슬람 경전)을 읽으며 기도와 금식을 한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굶주림의 고통을 느끼며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 하지만 올 이슬람 최대의 명절은 경기침체와 신종 플루,테러 공포에 얼룩져 광채를 잃어버린 모습이다.


◆불황 · 신종 플루에…'라마단 특수' 실종

매일 새벽 동이 틀 무렵 모스크(이슬람 사원)의 타종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라마단 기간엔 해가 질 때까지 물을 포함한 일체의 음식물 섭취와 흡연,심지어 침을 삼키는 것까지도 금지된다. 올해는 특히 33년 만에 처음으로 한여름인 8월에 라마단이 시작돼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아야 하는 이슬람 교도의 고충은 더욱 심하다.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며 기도와 명상으로 욕망을 참아낸 뒤엔 각종 과일과 야채,고기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저녁식사 이푸타르(Iftar)가 허락되는 만큼 인내의 끝은 달다.

하지만 올해 라마단의 이푸타르 식탁은 극심한 불황 여파로 초라하고 썰렁해졌다. 인도네시아 일간지 콤파스데일리가 10개 대도시 1000여세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45곳이 이푸타르 소비를 줄이겠다고 응답했다. 보통 라마단 기간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영양가 높고 값비싼 음식을 먹는다. 식품 가격이 5~10%가량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불황과 실업으로 이슬람 가정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라마단 특수'는 실종된 반면 식품값만 치솟았다. 알제리에선 쇠고기와 양고기값이 ㎏당 600디나(6유로)에서 900디나(9유로)로 올랐고,닭고기 가격도 250디나에서 350디나로 뛰었다. 이에 따라 요르단 소비자연합인 CPS는 1㎏에 15유로로 급등한 쇠고기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카타르 정부는 가격이 뛴 식품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집중 단속에 들어갔다.

이푸타르를 비즈니스의 장으로 활용했던 아랍 기업들도 행사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두바이의 상징인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의 이푸타르 연회 예약률은 작년보다 10~20% 줄었다. 두바이의 PR그룹인 포츠머스의 에일린 왈리스 매니저는 "경기침체로 아랍 기업들이 대대적인 비용절감에 나서면서 올 라마단엔 대부분의 고객들이 소규모 이푸타르 행사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텐트를 빌려 야외 이푸타르 이벤트를 개최하는 수요는 무려 70% 쪼그라들었다. 두바이에서 이푸타르용 텐트 대여업을 하는 샤킬 아메드는 "대여 고객이 4분의 1로 급감했다"고 밝혔다. 최고급 호텔에서 이푸타르 텐트와 식음료 뷔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비용은 200명 기준 1만3612달러에 달한다.

훈훈했던 라마단 인심도 팍팍해졌다. 기부금이 줄면서 공짜 이푸타르를 제공하던 자선 행사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나집 툰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모두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라마단 기간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를 조금씩만 늘리면 고통 속에 사는 말레이시아인들이 희망의 빛을 얻을 것"이라며 기부를 독려했다. 몰디브 호텔들은 라마단 손님이 10%가량 줄자 직원들을 위한 라마단 상여금을 없앴다.

신종 플루도 라마단 특수에 직격탄을 날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6명이 사망하고 2000명이 감염되는 등 중동에서도 신종 플루가 기승을 부리자 이라크 튀니지 알제리 등 각국 정부는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의 메카와 메디나 성지순례를 제한하고 나섰다. 이란은 라마단 기간 중 사우디행 항공편을 전면 취소했다. AFP통신은 "라마단 시즌마다 수만명의 순례객이 초절정을 이뤘던 메카와 메디나가 올해 최악의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 정부에 따르면 수도인 리야드에서 메카까지 성지 투어 패키지 상품 가격은 25% 싸졌지만,올해 성지순례 방문객은 작년보다 70%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아랍 종교 지도자들은 신종 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올 라마단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라"고 권고했다. 마스크를 쓴 채 모스크에서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도 많아졌다.


◆분쟁지역선 마지막 라마단될까 노심초사

6년 만에 시아파와 수니파가 같은 날 라마단을 시작해 화해의 제스처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던 이라크에선 라마단 기간에도 폭탄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신화통신은 26일 "이라크인에게 평화적인 라마단은 사치에 불과하다"며 "분쟁지역의 무슬림들은 올해가 인생 마지막 라마단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9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선 폭탄테러로 민간인 585명이 부상을 입고 97명이 목숨을 잃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전기가 끊기면서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촛불을 켜놓고 공포에 떨며 라마단을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5년간 반군이 3700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태국 남부에선 라마단 시작일(22일)에도 자원봉사자 3명과 시민 3명이 반군에 희생됐다. 지난달 수도 자카르타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폭탄테러가 발생,50명이 부상당하고 7명이 사망한 인도네시아에선 경찰들이 라마단 의식을 주관하는 종교지도자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알카에다를 배후로 한 이슬람 무장세력인 제마이슬라미야(JI) 소속 급진파 종교인들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은밀하게 색출작업을 벌이고 있다. 소말리아 정부는 반군 세력에 대해 "신성한 라마단 기간 중에는 일체의 발포를 중단할 것"을 거듭 요청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