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비밀해제된 CIA 신문보고서 공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9.11 테러사건의 용의자들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용의자들의 자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가 하면 용의자의 어머니를 면전에서 성폭행할 수도 있다는 인상을 풍기는 방식으로 자백을 강요했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NBC방송은 미 법무부가 24일 공개한 CIA의 테러용의자 신문에 관한 보고서를 인용, 9.11 테러용의자인 할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한 신문요원이 미국본토에 대한 또 다른 테러공격이 발생할 경우 "당신의 아이들을 죽이겠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신문요원은 알 카에다 소속의 테러용의자인 아브드 알 라힘을 신문하면서 "너의 모친을 여기에 불러 올 수 있다", "너의 가족도 데려올 수 있다"고 말해 마치 용의자의 면전에서 가족성원 가운데 여자를 성폭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시도한 것으로 보고서에서 확인됐다.

그러나 알 라힘을 신문한 요원은 가족을 데려다 성폭행할 수 있다는 식으로 위협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CIA 신문요원들은 또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총과 전기드릴을 위협 도구로 사용했으며 다른 용의자를 처형하는 장면을 암시하기 위해 총성이 울리는 상황을 연출, 반복적으로 심리적 위협을 가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전기드릴을 이용할 때는 용의자를 발가벗기고 머리에 두건을 씌워 세워둔 채로 드릴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도록 함으로로써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용의자가 기절할 때까지 경동맥(頸動脈)을 꽉 누른 다음 혼절한 용의자를 흔들어 깨우는 식의 고문을 3차례나 반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총성을 이용해 동료 수감자가 처형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방식이나 살해 위협을 가하는 것은 미국의 현행 고문금지법에 저촉되는 것이지만 신문요원들은 직접적으로 살해위협을 가한 적이 없다며 법규 위반 혐의를 부인했다.

신문요원들은 특히 가혹신문 기법을 통해 파키스탄 주재 미국 대사관에 대한 알 카에다의 테러 음모를 비롯해 열차 탈선, 주요소 폭발, 교량 파괴 등과 같은 테러 기도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 가혹한 신문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강변했다.

한편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베테랑 수사검사인 존 더럼을 특별검사로 임명, CIA 신문요원들의 법률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담당토록 했다.

더럼 특별검사의 업무는 예비조사에 해당하며 과거 조지 부시 행정부의 가혹신문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라고 정부측은 설명했으나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 내용을 감안할 때 고문금지법을 위반한 신문요원들에 대한 기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백악관은 주요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신문을 전담하는 특별팀을 창설, 이 기구를 연방수사국(FBI)내에 설치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직접 관리감독을 받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는 테러용의자에 대한 신문 작업을 CIA의 관할에서 백악관의 직접 감독 아래로 옮기는 것으로, 과거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의 가혹한 신문 방식이 되풀이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백악관의 빌 버튼 부대변인은 이번 조치가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신문과정에 CIA가 완전히 손을 떼도록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주요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신문 전담 특별팀이 FBI에 본부를 둔 점이나 백악관이 직접 감독권을 행사하기로 한 점을 감안하면 CIA의 역할은 현저히 축소된 것으로 해석된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