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처음 하는 일은 대체로 어렵게 마련이다. 특히 미국 같은 선진국과 비즈니스를 할 때는 더 그렇다. 좋은 기술과 제품력이 있어도 고객을 확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삼성 현대차 등 한국 대기업이 미국에 이만큼 뿌리내린 것도 수십년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얻은 결실이다.

최근 들어 서비스업 분야에서 미국과 비즈니스를 하려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미국 환자 한국 유치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의료보험 개혁을 두고 국론이 갈리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으로선 무보험자 4700만명을 방치하는 게 창피한 일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보 개혁 추진에 힘이 실렸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반면 서비스 질은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며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고비용 의료 구조는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라면 한국에 유치해 봄 직하다. 의료 수준은 선진국 수준에 못지않은 데 비해 비용은 훨씬 낮기 때문이다. 관상동맥 우회술은 미국에서는 13만달러가 필요하지만 한국에서는 3만4000달러면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지난달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서울대 병원,세브란스,현대아산 등 12개 병원 관계자들과 함께 직접 뉴욕에 와서 한국 의료 설명회를 가졌을 때 미국 의료보험사들의 관심이 컸던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후 미국 의료 보험사들이 자신들의 고객을 한국 병원에서 치료받도록 하는 신상품을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항공료와 숙박료를 감안해도 남는 장사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 최대 의료보험사 중 하나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 관계자들은 10월 한국을 찾아 의료 수준과 숙박서비스 및 언어 문제를 점검할 예정이다.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한국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보험상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선 고용 및 부가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 경기부양책을 활용한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조달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경기부양 차원에서 정부 재정지출이 확대될수록 조달 시장은 커진다. KOTRA 북미본부가 경기부양을 겨냥한 미국의 정부조달 프로젝트를 분석한 결과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가 178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로 △신재생에너지 △공공주택 에너지 리모델링 △광대역 인터넷 확대 △고속도로 건설 △수자원 관리 △헬스 정보기술(IT) 분야 등이다. 떡은 크지만 한국 기업이 곧바로 입찰에 참여해 사업을 따낼 순 없다. 미국 내 수주 실적이 없어서다. 홍순용 KOTRA 북미본부장은 "최종 입찰자에게 상품과 용역을 제공하는 이른바 프라임 벤더를 발굴해 공략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프라임 벤더만 잘 찾아서 한국 기업과 연결시켜 주면 승산이 있다는 게 KOTRA 측의 설명이다. KOTRA는 11월 중 프라임 벤더 50개사를 한국에 초청해 기업 설명회를 갖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인내력을 갖고 비즈니스 영역을 차근 차근 넓혀가는 게 중요하다. 때론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선행돼야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을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