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 발자취 찾기 쉬어질 듯

미국 정부가 최근 약 5천300만명에 달하는 외국인 이민기록들을 일반에 공개하고 영구 보존키로 결정함으로써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유명인사들 뿐 아니라 19세기 말 이후 기회를 찾아 신대륙의 문을 두드린 수많은 미국인 선조들의 족적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외국인 파일'(Alien File)로 불리는 이들 이민기록은 당시 미 국경관리들이 이민자들을 인터뷰하거나 제출받은 각종 증빙 자료들이다.

뉴욕타임스는 12일 인터넷판에서 19세기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 외국인 이민 기록들이 일반에 공개되면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사진과 서한, 인터뷰 기록들을 통해 두 차례 세계대전 등 격동기에 미국 입국을 시도했던 선조들의 애환 어린 흔적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기록들을 보관 중인 국토안보부는 올해 체결한 부서 간 합의에 따라 외국인 이민기록들을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국립문서보관국(NARA)에 양도하며 개인 이민 기록으로는 NARA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이들 기록은 색인 작업을 거쳐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종전에는 외국인 이민기록을 열람하려면 복잡한 정보자유법(FIA) 절차에 따라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됐으며 또 원본이 아닌 복사본에만 접근이 가능했다.

중국계인 텔마 라이 창은 이런 복잡한 절차를 통해 그녀의 부친이 입국 당시 관리들과 인터뷰한 103 쪽 분량의 기록들을 입수했다.

그녀의 부친은 1922년 12세 때 중국에서 이민을 왔으며 당시는 중국인배척법에 따라 대부분의 중국인들에 대한 입국이 금지됐던 시기였다.

이에 그녀의 부친은 이미 미국에 체류 중인 가족의 아들로 거짓 서류를 만들어 미국에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당국이 이민 기록을 공개하고 영구 보관키로 한 것은 많은 역사학자와 이민 단체들의 승리로 간주된다.

통상 정부 부서는 연방규정에 따라 75년이 경과하면 기록들을 폐기할 권한이 있다.

만약 국토안보부가 규정에 따라 이 기록을 폐기 처분했다면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으려는 후손들의 노력은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이민 기록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다양한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어 역사학자나 족보학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미국으로 도피했는데 당시 40쪽에 달하는 그의 여행 서류들이 기록에 포함돼있다.

또 2차 대전 발발 이전 박해를 피해 유럽을 탈출했던 유대인들의 관련 기록들도 후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 기록문서에 대한 일반의 접근 요구는 근래 'Ancestry.com'이나 'Footnote.com'과 같은 웹사이트 등을 통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가계 족보를 찾기가 쉬워지면서 활성화됐다.

이들 기록은 캘리포니아주 샌 브루노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소재 문서보관소에서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이민 기록들이 공개되면서 연로한 이민세대들에게는 한편으로 걱정도 된다.

그들은 중국인배척법이 발효되던 당시 서류 등을 위조해 입국한 경우가 있으며 자칫 기록 공개로 당시의 거짓말이 탄로나 추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

그러나 국토안보부 관리들은 기록 공개가 법집행이 아닌 역사적 목적에만 이용될 것이며 개인 기록들은 해당 이민자가 사망하거나 100세가 된 후 공개될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yj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