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상품시장에서 원유, 철강, 비철금속 등 대다수의 원자재들이 일제히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4일(이하 현지시간)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올해 최고치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유가는 올들어 56%, 대표적 비철금속인 구리(전기동)는 87% 뛰어올랐다. 19개 주요 국제원자재 가격 추이를 나타내는 로이터/제프리 CRB지수는 이날 266.57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6개 원자재 가격을 반영하는 UBS-블룸버그 CMC 지수도 4.3% 급등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특히 비중이 큰 17개 원자재를 포함한 일본 닛케이상품지수는 118을 넘어서며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인 2008년의 평균치 110.181을 웃돌고 있다.

이에 따라 올 초부터 세계 최대 원자재 소비국인 중국의 거센 매수세를 타고 시작된 원자재 ‘상승 랠리’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면 단기간에 급격히 오른 가격 부담으로 조정을 거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향후 원자재 가격의 흐름은 어느 쪽으로 움직이게 될까.

◆‘오리무중’ 국제유가 70달러 ‘돌파’

[원자재] 불붙은 원자재 '상승랠리' 어디까지? …'블랙홀' 중국이 최대 변수
국제유가는 올 들어 수차례의 급등락 끝에 최근 70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4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9월물은 배럴당 71.42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올해 첫 거래일 당시 46달러 수준이었던 WTI는 상반기 들어 급격한 등락을 거듭하며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그래프를 그려 나갔다. 지난 6월 11일 72달러로 올해 최고점을 경신한 국제유가는 잠시 조정기간을 거친 후 다시 70달러선을 견고히 다지는 모습이다.

국제유가의 향후 전망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영국 세계에너지센터(CGES)는 ‘널뛰기’를 거듭하는 유가의 급등락에 대해 “아직까지는 세계 경기 회복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기가 조금이라도 호전될 조짐을 보일 때마다 투기자본이 가세해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국제상품 가격이 본격적인 오름세로 들어서면 특히 유가가 다른 상품들보다 반등폭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클 린치 스트래티직에너지 앤드 이코노미 리서치회장도 “경제지표가 호전되며 상품시장이 상승국면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사라 에머슨 ESAI 이사는 “국제유가가 경기 회복 소식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오름세가 계속될 지 여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필 플린 PFG베스트 애널리스트도 “현재 유가는 석유수급 자체보다 경기 지표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유가격의 ‘적정수준’에 대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차킵 켈릴 알제리 석유장관은 “원유 가격의 균형점(equilibrium)은 90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며 “올해 남은 기간 동안 65~70달러 사이에서 횡보하겠지만 재고량이 소진되고 나면 원유가격이 오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OPEC 회원국들도 유가가 약세를 보일 때마다 거듭 생산량 감축을 언급하며 유가 상승에 군불을 때고 있다.

◆구리 알루미늄 등 주요 비철금속 ‘폭등세’

국제 비철금속시장은 올 초부터 시작된 ‘원자재 블랙홀’ 중국의 매수세로 연일 최고점을 갈아치우고 있다.

4조 위안에 달하는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최근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 12개월간 최고치인 52.8을 기록했다. 미국의 7월 제조업지수도 전월대비 4.1상승한 48.9로 회복 국면을 보이고 있다. 달러화의 주요통화 대비 가치까지 하락하며 비철금속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알루미늄 등 주요 비철금속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구리(전기동) 3개월물 가격은 재고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4일 현재 t당 605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 11개월간 최고치다.이같은 흐름은 최근 급격한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 매물에도 별 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알루미늄 가격은 t당 2000달러대를 기웃거리고 있다. 특히 현재 재고량 중 상당수가 재정거래에 묶여있어 수급 상황이 좋지 않다는 분석이 잇따르며 올 들어 최고치까지 상승했다. LME에서 알루미늄 3개월물은 4일 현재 t당 1990달러로 장중에는 2000달러를 넘나들기도 했다.

비철금속 가격의 상승을 이끈 것은 역시 최대 소비국 중국이다.

루비니 교수는 “중국이 성장률 8%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세계 경기 회복과 중국의 지속적인 수요로 인해 국제 상품가격이 장기적으로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막대한 상품재고로 인해 경제 성장세를 뛰어넘는 ‘초과 공급’ 상태에 직면할 것”이라며 하반기 중 상품가격이 조정을 거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전후 이래 최대의 침체’라는 우려를 자아내며 원자재 가격의 발목을 잡았던 미국 자동차시장이 최근 ‘중고차 현금보상’ 법안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이며 원자재값 ‘추가 상승’ 전망에 힘을 싣기도 했다. 다만 상당수 원자재 애널리스트들은 ‘단기간에 급등한 가격이 부담’이라 분석했다. 단기적인 조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철강 가격, 중국 ‘몽니’에 몸살

철강제품의 주원료인 철광석 도입가격을 둘러싸고 벌어진 중국과 생산업체 간의 ‘불꽃 튀는’ 마찰은 여전히 ‘현재 진행 형’이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세계 주요 철강업체와 원료 공급업체는 매년 3~5월 사이 장기 공급가격을 결정해 왔다. 더욱이 이 같은 체계가 큰 문제없이 지속돼 왔다. 지난해 4분기까지 장기 공급가격이 현물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던 만큼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급격한 가격변동 탓에 이 같은 계약 체계 자체가 바뀔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기 공급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은 호주 리오틴토, BHP빌리턴 등 주요 철광석 생산업체들에 할인폭을 늘려달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계약 체결이 연기되면서 생산공급에 차질을 빚게 되자 현물가격은 다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다. 결과적으로 장기 공급가격이 더 낮은 수준을 보이게 됐다. 중국의 최근 철광석 수입가격은 t당 100달러를 넘어섰다.반면 장기 공급가격은 60달러(선적 기준)이다. 중국의 ‘몽니’가 자승자박이 된 셈이다.

◆농산물, 중국 매입에 ‘반등’

대두, 옥수수 등 주요 농산물 가격은 알맞은 기후조건 덕에 높은 수확량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올 상반기 내내 하락세를 지속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수입이 폭증하면서 강력한 반등세을 보이기도 했다.

4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옥수수 12월 인도분은 부셸 당 3.6575달러, 대두 11월물은 부셸 당 10.315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대두는 4거래일 연속 상승, 지난 5월 이후 가장 긴 오름세를 기록했다. 백설탕 가격은 생산 차질로 인해 t당 505달러까지 상승하며 25년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농산물 가격이 급격히 상승한 이유는 미국산 농산물의 중국 수출량이 크게 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미 농무부(USDA)가 지난 30일 발표한 농산물 교역현황에 따르면 미국 수출업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중국에 192만t의 대두를 판매했다.향후 수확될 180만t 분량도 이미 계약된 상태다. 옥수수 판매량도 지난 4주 동안 전년동기비 55%가 급증했다.

중국이 수입량을 대폭 늘린 것은 미국산 농산물 가격이 자국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낮기 때문이다.

런던 라보은행은 “세계 농산물 가격이 중국 내 거래가격에 맞춰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그 버그만 어드밴티지 트레이더스그룹 농산물 브로커는 “미국산 농산물 공급량은 급증하는 수출로 인해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향후 전망은?

올 들어 급등한 원자재 가격의 향후 전망에는 숱한 변수들이 놓여있다. 먼저 단기간에 급등한 가격이 부담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선물업계에서는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 조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관건은 중국의 재고비축 랠리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여부라는 설명이다.

여기에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추진 중인 상품 선물 투기 규제 방안도 또다른 변수다.지금까지 급등한 에너지 상품 선물 등 원자재 가격은 수요공급보다는 투기세력에 의해 움직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CFTC는 금융 이득을 얻기 위해 거액의 자본을 선물시장에 투자하는 대형 금융기관들에 대해 상품투자포지션을 제한하는 새로운 법규 도입을 준비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7월까지 금융 투자가들은 약 3000억달러를 선물 거래에 쏟아 부었다. 이는 2006년 1월에 비하면 4배나 많은 액수다.

팀 에반스 씨티선물 애널리스트는 원자재 가격을 움직인 것은 "상승에 대한 기대와 시장구조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기가 바닥을 치고 급격히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거래를 반복하며 수익을 올리는 투기세력이 시장의 취약한 틈새를 파고 들면서 원자재 시장이 혼탁한 양상을 띄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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