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34번가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02층짜리 미국의 상징 건물이다. 뉴욕 관광객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다. 안그래도 북적이는 이 건물이 요즘 더욱 혼잡해졌다. 올해 78세인 '늙은' 건물을 '그린 빌딩'으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어서다.

녹색 바람은 대형 빌딩도 예외가 아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처럼 랜드마크 건물들이 잇따라 녹색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엔 친환경 규제가 엄격히 적용된다. IT(정보기술)회사의 사무실에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각국 정부는 일정 수준의 친환경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정도로 녹색 빌딩 만들기에 심혈을 쏟고 있다.

◆리모델링으로 친환경 '회춘'

미국에 있는 빌딩은 464만여개에 이른다. 이 중 75%는 지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그러다보니 에너지 절감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에너지 소비의 블랙홀로 간주됐다. 미국 내 탄소배출량의 절반가량은 빌딩에서 나온다. 전력의 60% 이상도 빌딩에서 소비된다. 자원 소비의 40%,폐기물 배출의 20~50%가 이뤄지는 곳도 대형 빌딩이다. 이런 빌딩을 '닦고,조이고,기름쳐서' 최대한 에너지 손실을 줄이자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년 완공된 이 빌딩은 지난 4월부터 회춘작업에 들어갔다. 공사기간은 5년.이 기간 동안 1억달러가 투입된다. 6500여개 창문 모두에 특수 필름을 입히고 보온재 등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여름에는 열 보존량을 줄여 시원하게 하고,겨울에는 열 손실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조명과 환기시설,냉수시스템도 최첨단 시설로 개선한다. 첨단 센서로 무장한 절전시설과 에너지 사용 감시 시스템도 등장한다. 이 공사가 끝나면 건물 안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38%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절약되는 돈만 연간 440만달러에 달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다.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1974년에 지어진 이 건물도 올해부터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단순히 절전이나 방열시설을 보충하는 수준이 아니다.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설비를 갖추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5년간 3억5000만달러(약 4513억원)를 투입하는 공사가 끝나면 연간 전기 사용량의 80%가 줄어들고,9000만ℓ의 물이 절약된다.

◆'그린 빌딩' 아니면 신축 불가능

보스턴 교외의 하버드대.이 대학 정문 건너편에는 와이즈만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100년 이상된 고서적을 보존 처리하는 곳이다. 고서를 담당하는 곳인 만큼 건물도 고색창연할 듯 싶다. 그런데 아니다. 겉모습부터 다르다. 투명한 유리로 된 최신식 건물이다. 내부시설은 그린 빌딩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 냉난방의 에너지는 지열이다. 건물 지하에 관정을 박아 지하수와 지표면간의 온도차를 활용했다.

에너지 효율성도 일반 빌딩보다 30% 높다. 탄소배출량도 최소 수준으로 줄였다. 건물 내부 조명은 들어오는 햇빛의 양을 감지해 자동으로 밝기가 조절된다. 도서관이 완공된 것은 2006년.이런 시설을 인정받아 친환경 건물 인증기준인 LEED에서 두번째로 높은 등급인 '골드' 인증을 받았다.

다른 건물도 비슷하다. 보스턴 시내 한복판에 있는 맨유파이낸셜라이프 빌딩은 이중 유리벽 구조를 갖췄다. 여름엔 열 흡수를 줄이고 겨울에는 열 보존을 높여 에너지 소비를 연간 6% 정도 절감하고 있다. MIT 캠퍼스 내 있는 최초의 그린 빌딩인 스타타센터는 빗물을 모아 화장실 물 등으로 활용한다. 냉난방한 공기를 천장에서 내려보내지 않고 바닥에서 올려보내는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디자인도 채택했다.

이처럼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이 녹색을 지향하는 것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 함께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미국 주요 도시에선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친환경 그린 빌딩이 아니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스타타센터의 친환경 디자인을 맡았던 벤더와일사의 줄리 파켓은 "요즘 새로 짓는 모든 미국 연방정부 건물은 리드 인증을 받아야 한다"며 "보스턴시는 2년 전 일정 규모 이상 신축 건물은 무조건 리드 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시도 4년 전부터 새로 짓는 건물은 최소 리드 '실버'이상의 친환경 건물로 짓도록 하고 있다. 친환경 도시로 이름난 콜로라도주 볼더시도 병원이나 레크리에이션 센터 등 공공건물을 중심으로 리드 인증을 받은 건물들을 배치하고 있다.

미국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친환경 건물 보급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제는 세계표준을 좌우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친환경 건물을 지으려면 2~5%의 건설비가 추가된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산성이 향상돼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무공간에 이는 그린 IT바람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과 함께 사무실 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런 움직임은 주로 IT 업계에서 일고 있다. 이른바 '그린 IT' 열풍이다. 그린 IT는 첨단 IT 기술을 활용해 대용량 서버 등 관련기기들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린 IT기술이 적용된 친환경 서버를 들여놓는 건물은 자연스럽게 에너지 사용량이 준다. 온실가스 배출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린 IT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IBM HP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 서버 및 데이터센터 관리업체들이다. 미국 내 모든 서버와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소비량은 미국 내 모든 TV가 사용하는 전력량보다 많다. 데이터 센터 비용의 70%가량이 오염물질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서버냉각 관련 비용이다. 당연히 이를 줄이는 게 급선무다.

IBM은 2007년부터 세계 각국에 구축해 놓은 데이터센터에 '빅 그린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서버 크기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바람을 이용한 자연 냉각기술을 도입,에너지 사용량을 줄이자는 게 골자다. IBM은 빅 그린 전략을 통해 지난해 전 세계에서 42%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거뒀다.

보스턴 · 뉴욕=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리드(LEED · 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미국그린빌딩위원회가 주관하는 친환경 건물인증.에너지 효율과 재생에너지 사용비중 등을 기준으로 플래티넘과 골드,실버,서티파이드 등 4개 등급으로 나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