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개인적 방북" 불구 김정일 중대제안 가능성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4일 전격적으로 방북함으로써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북.미 관계는 물론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정부 당국자들은 그의 방북이 지난 3월 이후 북한에 억류돼있는 미국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한 '개인적 방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상징하는 정치적 위상을 감안할 때 극적인 변화의 모멘텀이 조성될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특히 과거 재임시절 북한과 제네바 협상을 하고 북.미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적극 나섰던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대한 제안'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견상으로 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제1차 핵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전격 방북과 유사하다.

카터 전 대통령 방북 당시처럼 북.미간 대결국면이 협상국면으로 전환될 것인지는 두고 볼 문제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가 북한의 비가역적 비핵화를 전제로 북.미 관계정상화는 물론 경제.에너지 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 등을 망라하는 '포괄적 패키지'를 제안해놓은 시점이어서 더욱 시의적인 무게감이 실린다.

따라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미국과 북한은 새로운 국면에 맞는 새로운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 경우 부시 행정부 시절 운영됐던 북핵 6자회담이 다시 가동할지, 아니면 새로운 협상틀이 출현할지는 향후 북미간 협의 과정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 정부가 그의 방북을 철저하게 '여기자 문제 해결을 위한 개인적 방문'으로 규정할 가능성이 큰 만큼 약간의 시간차가 생길 가능성은 있다.

이 경우 미국 측은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의 협의를 강화하면서 명분을 쌓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과정을 거칠 경우 본격적인 북.미 협상은 9월 이후에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북한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불러놓고도 '원하는 결과'를 내놓지 않을 경우 북.미 관계가 오히려 악화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무게감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북.미 양측은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되기까지 뉴욕채널을 통해 긴밀히 협의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인도적 문제인 여기자 문제와 핵 문제 등은 철저히 분리해야 하며 특히 북.미 양자 대화가 가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6자회담 틀내에서 진행돼야함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문제점 등을 강조하면서도 북.미 양자 협상에 대해서는 적극성을 드러내는 한편 여기자 문제도 '주요 정치 현안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북한 측은 여기자 석방 교섭을 위해 과거 유사한 사례를 거론하며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각료 이상의 고위급 현직 관료를 평양에 보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고 미국은 장기화되는 여기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남북관계도 중대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1994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서도 북미 관계의 개선뿐만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전격 제안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되는 등 남북관계도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었다.

이번에도 과거의 일이 재연될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 북.미관계 해빙을 상징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개선'을 북측에 강력히 촉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핵심 대북 현안인 개성공단 근로자 유모씨 억류 문제의 조기 해결을 촉구하고 북측의 긍정적 대답을 끌어낼 경우 유씨 문제에서부터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만 전념하기 위해 남측을 향해 오히려 더 냉랭한 메시지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한국 내부에서 이른바 '통미봉남(미국과만 대화하고 남한과 대립하는 양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북.미관계의 변화 등에 대비, 현재 남북관계 개선 등에 방점을 맞춘 새로운 대북 제안 등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