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17일 이라크 중서부 지역.

걸프전에 참전한 미 해군 소속 조종사 마이클 스콧 스파이처 대위(실종 당시 33세)는 전투기를 몰고 이라크 지역을 공습하던 중 격추돼 실종됐다.

딕 체니 당시 미 국방장관은 "걸프전에 참전한 미군 중 최초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하지만 스파이처 대위의 행방은 묘연했다.죽었는지,살았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전사(戰死)'가 가장 높은 가능성을 안고 있는 단어였지만 그의 상태는 조사 상황에 따라 때때로 '작전 중 실종', '납치' 등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세월은 18년이 흘렀다.

3일(이하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즈(LAT), FOX뉴스 등 미 전역의 언론들은 '걸프전 미군 최초 희생자의 유해가 18년 만에 발견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미 해군은 1차 걸프전 발발 첫 날인 1991년 1월 17일 전투기 격추로 실종됐던 스파이처 대위의 유해를 이라크 안바르주에서 발견했다고 지난 2일 공식 발표했다.

발견 당시 스파이처 대위의 시신은 현지 원주민들에 의해 매장된 상태였다. 미 해군은 지난 1일 시신이 후송된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그의 치과 진료기록을 검토한 결과 발견된 유해와 일치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후 현재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스파이처의 신병확보 작업은 한동안 중단된 상태였다.하지만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 후 발발한 이라크전 덕분(?)에 미군의 이라크 진입이 가능해지면서 '스파이처 찾기'기 재개됐다.

그러던 중 미 해군은 지난달 초 스파이처가 탑승한 전투기의 추락 지점 부근에 그의 유해가 매장돼 있다는 제보를 접수, 발굴 작업끝에 신원을 확인했다.

스파이처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미군 통수권자였던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우리 모두는 그가 걸프전의 역사적인 승리를 이끈 영웅이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그리고 지금 그의 가족과 전우들은 그가 쿠웨이트의 자유화를 위해 목숨을 던진 최초의 애국자임을 알게 됐으며 역사는 이를 기록할 것"이라고 치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스파이처 대위를 가리켜 "우리의 자유를 위해 궁극적인 희생을 치르게 한 헌신적인 국방의 의무를 상기시켰다"고 평가했다.

미군 당국은 이번 유해 발굴은 미국 장병들을 고국으로 데리고 오겠다는 군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군 대변인은 "이번 발굴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상관없이 우리의 군인들을 찾는 노력을 해군이 결코 중단하지 않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8년간 '유해라도 찾아달라'는 요청을 계속해 온 스파이처 대위의 가족들은 "포기하지 말고 그를 꼭 찾아달라는 우리의 요구에 국방부가 계속해서 일해왔다는 게 자랑스럽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스파이처 대위는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해 비행기 충돌사고로 전사한 아버지 월레스 스파이처의 뒤를 이어 미 해군에 입대했다. 유족으로 처와 딸(21·실종 당시 3세), 아들(19·실종 당시 1세)을 남겼다. 미망인은 해군 장교와 재혼했다. 스파이처는 실종 후 2회에 걸쳐 진급했으며 명예로운 부상을 당한 군인에게 주는 '퍼플 하트(Purple Heart) 훈장'을 받았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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