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가이트너 '소비자금융보호청 신설' 설전
FRB 권한 강화도 곳곳 마찰음… 연내 처리 불투명
오바마 금융시스템 개혁 '용두사미' 되나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지난 6월 의회에 야심차게 제출한 금융감독 개혁안이 자칫 뱀꼬리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행정부와 감독기관의 시각차,감독기관들 간 밥그릇 챙기기가 난무하는 데다 의회 내 처리 우선순위에서도 밀려 개혁안은 추동력까지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금융감독 개혁안은 뼈아픈 반성에서 출발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마련된 기존 감독제도는 금융권과 금융상품의 급속한 발전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나마 후진적인 감독 자체도 소홀해져 이번 금융위기가 발생했고,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권한을 강화하고 소비자금융보호청을 설립하자는 방안을 개혁안의 큰 줄기로 삼은 까닭이다.

FRB 강화는 전체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는 대형 은행은 물론 보험사를 포함한 비은행권의 대형 금융사를 망라해 규제 ·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FRB에 집중시키는 안이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FRB가 금융 시스템의 광범위한 건전성을 감독할 권한을 갖는 것은 중앙은행이 가진 권한의 자연스러운 확장이라고 주장한다. 개혁안을 작성한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도 금융 시스템의 체계적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 론 폴 공화당 하원의원은 FRB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화되는 안이라며 FRB 자체를 규제하는 법안을 제출,맞불을 놨다. 법안은 FRB의 통화 정책과 긴급대출권을 의회 산하의 회계감사원(GAO)이 새로 감사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주당 의원 78명을 비롯한 250명의 의원들이 공동 발의자다.

여기에다 셰일라 베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은 각 감독기관 수장이 참여하는 금융위원회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 신설은 개혁안에 포함돼 있지만 가이트너 장관이 주도하게 된다. 하원의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가칭 시장위원회 및 은행 자본충족위원회를 설립하자는 입법안을 마련했다. 통화감독청(OCC)의 존 듀건 청장은 FRB가 OCC로부터 은행 감독권을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고 거들었다.

모기지(부동산담보대출)와 신용카드 부문을 관장할 소비자금융보호청을 설립하는 안에 대해서도 찬반 논란이 거세다.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가이트너 장관과 버냉키 의장이 격돌했다. 지난 24일 하원 청문회에서 버냉키는 "위험을 감독하는 일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일은 밀접히 관련돼 있다"며 FRB에서 소비자보호권을 분리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베어 의장과 듀건 청장 역시 기존 감독기관의 소비자보호권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소비자금융보호청 신설을 반대했다.

그러나 가이트너는 "모기지업체와 같은 많은 비은행권 금융사가 감독기구의 감독을 받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FRB는 금융사 안전과 건전성에 초점을 맞추고,금융상품이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조사할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이트너는 또 감독기관 수장들의 반발에 "기득권을 방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개혁안 내용도 그렇지만 하원의 금융서비스위원회는 소비자금융보호청 신설안 표결을 오는 9월로 미뤄버렸다. 미 의회는 오바마 대통령이 따로 제출한 의료보험 개혁안을 둘러싸고 더 큰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목표로 한 연말까지 금융감독 개혁안이 일괄적으로 처리될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가이트너 장관이 24일 청문회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진 않았으나 당초의 안을 수정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25일 보도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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