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1일(현지시간) 시중 과잉 유동성을 회수하는 이른바 '출구전략(Exit Strategy)'과 관련,당분간 경기 부양에 역점을 두고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하원 금융위원회에 나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상당기간 적절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하지만 그동안 취했던 초저금리 정책과 양적 완화정책을 순조롭고 시의적절한 방법으로 다시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구전략 시행 시점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플레이션 유발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비춰볼 때 출구전략은 올해 말까지 장기 국채 매입 프로그램이 마무리된 뒤 각종 비상 유동성 공급제도의 자연스러운 청산과 함께 내년 하반기께부터 시행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 경기 상황에 관해 버냉키 의장은 "경기 하강 속도가 상당히 완화됐으며 수요와 산업생산 관련 지표들은 경제가 안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그러나 금융시장이 여전히 경색돼 있어 다수의 가계와 기업이 금융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하반기부터 미국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서고 연말 혹은 내년 초 기업들이 고용을 늘릴 수 있지만 고용시장이 정상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경기 평가기관인 전미경제조사국(NBER) 의장을 지낸 마틴 펠트슈타인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도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더블딥(이중 침체)에 빠질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3분기에는 경기가 (전 분기보다)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연말에는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정부의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집행 효과가 소진되는 데다 기업의 재고 축적이 끝나는 시점이란 이유에서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이 전 세계 투자자 10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1%가 앞으로 2년간 불황이 미국 경제에 더 큰 문제라고 응답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비중(37%)보다 훨씬 높았다. 최악의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버냉키 의장이 잘 했다는 평가는 75%에 달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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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전략(Exit Strategy)=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국이 풀어놓은 돈을 거둬들이는 것을 말한다. 각국은 위기 탈출을 위해 정부 지출을 대폭 늘리고 금리를 낮췄다. 이른바 재정확대 및 금융완화 정책이다.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자 풀어 놓은 돈을 회수하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정상으로 돌려 놓는 일이 필요해졌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위기 때 썼던 대책에서 빠져나온다는 차원에서 '출구'라는 표현을 쓴다. 가장 핵심적인 출구전략은 금리 인상과 통화 환수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