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재에 협조적, 인물 제재 '상징적 의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위원회가 16일(현지시간)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5명의 인물과 5개 기업과 기관, 2개 물자에 대한 제재를 확정지으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번 `5.5.2 제재'로 인해 그동안 말 뿐이었던 대북 제재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특히 안보리의 대북 제재 조치로는 처음 도입된 핵 프로그램 관련자 개인에 대한 해외여행 금지 및 계좌동결은 실효성 여부를 떠나 큰 상징성을 띤다는게 유엔 외교관들의 설명이다.

◇ 제재 논의와 중국 태도 변화

이번에 안보리가 대북 제재에 원만히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중국의 태도 변화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 5월 25일 2차 핵실험 이후 6월 12일 채택된 새로운 대북 결의 1874호는 "30일 이내에 제재위가 제재 대상 인물과 기업, 물질에 대한 리스트를 마련할 것"을 명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유엔 외교관 상당수는 지난 2006년 대북 결의 1718호때의 상황에 비쳐 실효적 대북 제재 조치가 취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이 북.미간 양자 접촉이나 6자회담 등 다자접촉의 창구를 통해 협상에 들어가면 유엔의 제재는 실효성이 없어질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인 북한 우호 국가들이 구체적 제재에 흔쾌히 합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었다.

중국측은 `본국의 훈령'을 이유로 리스트 마련 시한인 지난 12일을 넘길 때까지 구체적인 논의를 진척시키기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 4월 로켓 발사에 이어 5월 2차 핵실험, 그리고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6발의 탄도 미사일 발사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공격적,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한 것이 오히려 안보리에서 중국의 입지를 좁혀 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는 중국과 북한간 형제 국가로서의 기반이 동북아 질서의 위협으로 드러난 북핵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고, 아직은 북한에 대해 `회초리'를 든 부모의 심정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어찌됐든 중국의 대북 정책이 상당부분 선회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한 안보리 소식통은 "중국으로서도 만장일치로 합의된 결의 이행에 책임있는 자세로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제재 인물 면면

우선 관심을 모았던 인물 제재의 경우 당초 서방진영이 제시했던 15명의 리스트에서 3분의 1만 남은 5명으로 최종 추려졌다.

유엔 일각에서는 제재 대상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다수의 외교관들은 "적절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제재 대상에 포함된 남천강 무역의 윤호진은 지난 2003년 4월 독일에서 고강도 알루미늄관 22t을 사들였다가 독일 세관에 압수된 뒤 주목받게 된 인물이다.

이 알루미늄관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에 쓰이는 원심분리기를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당시 윤씨는 이 알루미늄관이 중국의 항공기 회사에 보내질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국제원자력기구는 이 알루미늄관이 항공기 제작용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중국의 항공기 회사도 이런 주문을 낸 적이 없다고 밝혀졌다.

결국 북한 내에서 우라늄 농축을 위한 것 또는 시리아 원자력 개발과 관련된 것이라는 잠정 결론이 내려지면서, 윤호진은 북핵 관련 주요 부품 수입 등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 왔다.

리제선 원자력 총국장은 북한의 핵 사업 실무를 총괄하는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제 원자력 기구 등과의 연락 등 대외 업무를 맡으면서, 지난 2007년 BDA 문제와 관련해 직접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에게 서신을 보내 "BDA 문제가 해결되면 IAEA 실무 대표단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황석하 원자력 총국 국장은 리 총국장 밑에서 역시 대외 업무 및 원자력 개발 관련 기술 등을 총괄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리홍섭 영변 원자력 연구소 소장은 원자로 연구와 관리를 총괄하는 연구진의 수뇌 가운데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에 확정된 리스트에는 당초 서방진영에서 포함시키기를 희망했던 주규창 국방위원회 국방위원 겸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이명하 영변물리대학장 등 거물급 들이 제외되면서 다소 빛이 바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한 서방 진영 외교관은 "사람에 대한 제재는 큰 효과를 갖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북한 핵 관련자들이 해외에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해외 계좌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이들 관련자들이 해외에 나올 필요성이 있을 경우 신분을 위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이번 대인 제재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상징적 조치라는 관측이 높다.

안보리 협상 과정을 지켜본 또 다른 외교관은 "어떤 인물을 넣을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단지 제재 논의를 빨리 종결시켜야 한다는 촉박함 속에서 나온 타협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 강도 높아진 기업제재

단천상업은행 등 기존 3개 기업에 이은 이번 5개 기업.기관 제재 대상 선정으로 사실상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기관이나 기업의 상당수가 국제 사회의 제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해외 계좌 동결 등 대북 금융제재는 각국 정부 뿐 아니라 민간 부문인 전 세계 은행들까지 포괄하는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될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북한의 돈줄을 옥죄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과거 마카오 BDA 은행 계좌동결을 훨씬 능가하는 대북 압박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가 15일 대북제재 추진 현황 브리핑에서 "유엔 결의 1874호는 각국 정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은행들과 같은 민간부문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거래 본질을 속이는 다양한 금융거래에 관여하고 있는 북한에 매우 강력한 조항"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유엔 외교관들은 국제적 은행들의 경우 자신들의 신용이나 명성에 해를 미칠 수 있는 북한과의 불법적 거래를 자발적으로 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제재위는 미사일 제조 등에 사용되는 EDM(방전가공) 사용 탄소화합물 과 아라미드 섬유 필라멘트 등 2개 물자에 대해서도 수출입 금지 품목 리스트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당초 더 많은 첨단 소재나 기술 등에 대한 제재 방안이 협의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재위는 이미 시한을 넘겨 버린 제재 논의를 더 끌 수 없다는 차원에서 일단 2개 품목만 대상으로 정했다고 안보리 소식통은 전했다.
물자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논의를 통해 추가할 수 있도록 제재위 15개국간에 합의가 돼 일부 첨단 소재들이 추후 추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유엔본부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