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린성의 옌볜조선족자치주와 신장위구르자치구는 공통점이 있다. 겉으론 소수민족에 자치권을 부여한 행정구이지만 한족 비중이 급격히 늘면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 내 조선족은 190만명으로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3번째로 많다. 하지만 옌볜조선족자치주 271만명 인구 중 조선족은 80만명으로 30%에 불과하다. 자치주 설립 초기인 1957년만 해도 65%에 달했지만 지금은 조선족이 한국과 중국 남부 연해지역으로 대거 떠난 빈 자리를 한족이 차지하고 있다. 조선족이 옌볜에서도 소수민족으로 전락하면서 자치주 지위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위구르족 비중이 1953년 75%에서 46%로 크게 낮아진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농민 지원을 위해 정부에서 주는 농기계 보조금만 보더라도 조선족들의 실추된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제1도시인 옌지시에 올해 책정된 농기계 보조금은 400만위안으로 신청자의 90%가 한족이었다. 조선족들이 한 · 중 수교 이후 한국으로 가거나 중국 연해지역으로 진출하면서 판 농토를 한족들이 차지,농업경제권이 한족들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2명 이상의 자녀를 낳을 경우 지원금이 나오지만 조선족들이 한 자녀만 낳거나 아예 출산을 기피하면서 조선족 학교들의 폐교도 잇따르고 있다. 1996년부터 2000년 사이에 조선족 아이들의 조선학교 취학률은 절반 밑으로 뚝 떨어졌다.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백두산관리권도 상급기관인 지린성 정부가 가져가면서 재정자립 여력도 크게 줄었다. 옌볜자치주 국내총생산(GDP)의 33%에 달할 만큼 옌볜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내 조선족들의 송금액도 연평균 10억달러에 이르렀으나 지난해 7억달러로 크게 감소한 뒤 올 들어서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체성의 혼란도 심각하다. 조선족 젊은이들은 이제 조선어보다 중국 표준어인 푸퉁화나 외국어 공부에 매달린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한 동북공정은 조선족을 한족에 동화시키는 과정이다.

중국 중앙 지도부에서 조선족을 찾아보기 힘들 게 된 것도 조선족 위상을 보여준다. 지난해 3월 리더주(李德洙)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장관)이 퇴진하면서 당분간 중국에서 장관급 조선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7500만명 공산당원을 이끄는 204명의 중앙위원 가운데 조선족은 단 한명도 없다. 중국 중앙민족대학의 황유복 교수는 "대학 졸업생들이 대거 민간 기업에 취직하고 있어 조선족의 관계 인맥은 점점 엷어지고 있다"면서 "이 같은 현상은 1992년 한 · 중 수교로 본격화됐다"고 전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