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에 비해 더 평화로워졌는가? 이 질문에 대해 확실히 긍정적 대답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1세기 벽두에 인류 문명을 반문명적 방법으로 강타한 9 · 11 테러 이후 국제사회는 대테러 전쟁에 전력해왔지만 테러의 종식은 아직 요원하다. 이 시간에도 지구상 곳곳에서 개인과 개인,집단과 집단,국가와 국가간 충돌과 갈등은 사람과 자원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갈수록 복합화되는 세계 질서에서 평화와 갈등의 방정식은 과거에 비해 더욱 복잡해지고 해법도 복잡해졌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세계평화의 문제가 어느 한 나라의 힘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고 국제적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계평화포럼은 2000년부터 세계평화 수준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세계평화지수(World Peace Index)를 개발해 발표하고 있다. 원래는 유네스코의 '평화문화 고양을 위한 10년(Decade for the Culture of Peace)'운동에 고무돼 출범했지만,유네스코가 지표(indicator) 취합을 통해 평화를 고양하는 문화적 특성과 요인 이해에 주력했다면 세계평화지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수작성을 통해 평화수준에 대한 인류사회의 인식을 제고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세계평화지수는 세계평화의 객관적 수준 이해를 통해 평화의 취약지역과 분야를 파악하고,그런 취약 부분에 평화고양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하고자 한다.

세계평화지수는 각국의 평화수준을 지수로 산출하고,이의 비교를 통해 평화수준 제고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동시에 21세기 최후의 냉전지대인 한반도에서 세계를 향해 평화운동의 메시지를 발신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더 나아가 일기예보가 태풍이나 홍수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피해규모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처럼,세계평화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해 '세계평화의 경보체계'를 만들려는 이상을 갖고 있다.

세계평화포럼은 올해 9차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지난 8년간의 작업을 통해 발견한 사실은 21세기 세계평화가 단순히 전쟁의 결여나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는 매우 포괄적이고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21세기 세계평화는 테러와 반테러 간의 전쟁,인종 · 종교 · 문화 등 인간 정체성에 관련된 갈등,경제적 빈부 격차,정치적 억압과 폭력,실패한 국가들의 인권 및 참상 같은 눈에 보이는 반평화의 요소들뿐 아니라 지구 온난화,에너지와 물 부족,도시화 · 정보화 심화에 따른 인간소외와 비인간화 등 인간문명의 모든 측면과 직 · 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세계평화는 갈수록 복합적으로 변해 가는데 비해 평화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국가적 차원의 노력에 집중돼 있어서 세계평화의 증진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 세계평화는 어느 한 가지 요인이나 한 나라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따라서 세계평화 증진을 위해서는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에서 평화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지구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이에따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4년 'OECD 세계포럼'을 창설했고 그 참가국 규모만 130개국에 이른다. 21세기의 세계평화에서는 군사적 · 물리적 힘을 의미하는 하드파워에서 이제는 소프트파워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세계평화를 스마트파워로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지구사회가 다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올 10월 부산에서 개최될 '제3차 OECD 세계포럼'이 이러한 글로벌적 고민의 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주기를,우리나라가 글로벌 수준의 협력체계 구축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진현 <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