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복판에서 일어난 9 · 11사태때 테러현장을 수습한 총괄 지휘자는 주변 9개 블록을 관장하던 소방서장이었다. 세계가 경악한 재난에 처해 뉴욕시의 모든 상위기관장들이 자연스레 그의 지휘 아래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데는 미국 의 국가재난 대응체계인 ESF(Emergency Support Function) 프로그램이 가동됐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등 환경 변화와 사회구조의 급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시설재해,사회적 재해 등의 발생 빈도와 규모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나만은 절대 안전하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대처하는 듯하다. 방재안전관리 책임기관도 막연한 것은 오십보 백보다. 효율적인 방재안전 관리 체계를 기대하기에는 우리의 재해대응 인식이 한참 뒤져있는 것 같다. 정부 내에서도 순환보직제도 때문에 방재안전관리에 필요한 전문성과 경험을 쌓을 기회마저 주지 않고 '기피부서'로 전락해 있는 게 우리 실정이다.

정부의 방재안전관리 조직은 몇 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다. 조직과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각 부처가 맡고 있는 방재안전관리 업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상황 발생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부처는 드물어 보인다. 그나마 방재조직 따로,안전조직 따로이다. 방재의 최종 목표는 안전 확보이고,안전 확보의 전제는 방재이다. 헌법 34조6항에 명시된 국가의 방재안전관리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정비돼야 할 것이다.

특히 염려되는 것은 지난 2년간 국가적 관심을 가질만한 자연재해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간에 순환보직이 이뤄지고 책상머리 방재안전관리 행정만이 진행되다 보니 실제 상황 관리에는 어떨까 하는 우려가 앞서는 것이다. 방재안전관리의 경제성 문제도 눈에 보이는 '얻을 것'만 생각하지 말고 '잃을 수 있는 것'을 '잃지 않게 하는' 예방수단을 확보하는 예방사업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데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또 그러한 방법을 교육하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인지를 알게 해야 할 것이다. 재해예방사업은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한 경제 사업이지 단순히 금전출납적 사업이어서는 안된다. 예방투자가 '있을 수 있는' 손실을 막아 준다는 점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기업의 업무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재안전관리 활동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업무연속성이 단절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금전출납부적이 아닌 경제적으로 계산해야 할 것이다. 재해재난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하기만 해도 기업에 얼마나 득이 되는지를 볼 수 있는 기업인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업에서 채택하고 있는 BCP(사업영속성계획)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태안 기름유출 사태 때 삼성이 자원봉사 등 헌신적 대응활동을 통해 피해 주민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고,이를 통해 피해자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 사례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정부기관들은 방재안전관리를 위한 자기역할의 정확한 이해와 수행에 뿌리를 두는 기능적 통합 행정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전쟁 발발시 합참에서 육해공 작전을 총괄 통제하듯이 공인된 방재안전관리 프로세스에 관한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에게도 재난 발생시 행정안전부,국방부,국토해양부,농림수산식품부 등 유관 부처에서 맡아야 할 일관되고 유기적인 업무 시스템 매뉴얼이 소방방재청 준비로 갖춰져 있다. 문제는 부처간의 이해관계로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마철이다. 과거와 달리 국지성 폭우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 정부 부처는 물론 방재 관련 모든 기관들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ㆍ수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