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러시아·인도·中 4개국 첫 정상회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BRICs) 4개국은 16일 열린 첫 정상회담에서 '다극화된 국제 통화체제'의 필요성은 강조했으나 달러의 기축통화 위상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비켜가는 현실적인 입장을 취했다. 러시아가 달러 기축통화를 대신할 슈퍼통화 문제를 제기했지만 중국과 인도 등이 미온적인 입장을 보임으로써 브릭스가 한목소리를 내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국제금융기구와 유엔에서 발언권을 강화하고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하는 등 세계 질서에서 신흥국 파워클럽의 부상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받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자평했다.

◆상호 채권 매입 · 통화스와프 합의

브릭스 정상들은 이날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회동한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하고 더욱 다원화된 국제통화체제에 대한 강한 필요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달러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명백한 달러 비판은 없었다"고 전했다. 마켓워치는 "기축통화 다원화라는 장기적인 열망과 달러자산 손실이라는 단기적인 계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지는 특히 세계 최대 미 국채 보유국인 중국이 자승자박을 우려해 달러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하지만 브릭스 4국이 달러 의존을 줄이기 위해 서로 채권을 매입해 주고 통화스와프를 하거나 달러 대신 자국통화로 무역결제를 하는 방안 등을 추진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와 관련,브릭스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에게 보유 외환 운용을 다각화하는 방안을 만들라는 숙제가 주어졌다고 전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중국이 지난 3월 달러를 대신할 기축통화로 제안한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에 다른 통화도 포함시키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SDR는 현재 달러 엔 유로 파운드 등 4개 통화의 가중치로 표시되는데 위안화 루블화 호주달러 등 자원국들의 통화가 반영돼야 한다는 게 러시아 입장이다.

◆유엔도 개혁 필요

브릭스 정상들은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 강화 입장도 밝혔다. 신흥국과 개도국이 국제금융기구에서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이 이미 총 700억달러의 IMF 채권을 매입하기로 한 만큼 의결권 비중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공동성명은 또 유엔의 종합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인도와 브라질이 유엔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하려는 열망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인도와 브라질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해왔다.

또 정상들은 기후 변화에 대비한 건설적 대화에 함께 나서기로 했으며 에너지 생산국과 소비국,운송국 간 협력을 강화해 에너지 안보를 확고히 해 나가기로 했다. 이 밖에 정상들은 빈곤 문제와 식량 가격 변동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수십억달러의 보조금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세계식량 안보에 관한 성명을 별도로 채택했으며 내년 정상회담을 브라질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