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 · 감독 개혁안은 금융위기가 양산한 난장판을 수습하는 것이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금융개혁안 발표를 하루 앞두고 블룸버그TV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그 의미를 밝혔다. 다시 소를 잃지 않기 위해(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놓겠다는 의지다. 이번 개혁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다.

골자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권한 강화 △금융서비스감독위원회 신설 △소비자금융보호청 신설 △부실 금융사 정리 메커니즘 구축이다. 금융시장과 금융상품의 발전에 비해 규제와 감독체계는 한참 뒤처져 있다는 인식에서 마련한 대응책이다. 중앙은행인 FRB는 '최후의 대부자'로서 갖는 기존 통화 · 금리정책 결정에다 금융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감독하는 컨트롤 타워로서의 새로운 권한까지 갖게 된다. FRB 역사상 가장 막강한 파워로 평가된다. FRB는 특히 대형 은행과 보험사 등 대형 금융사를 집중 감독한다.

리먼브러더스 AIG 등이 파산과 부실화로 엄청난 충격을 줬듯 대형 금융사들은 전체 금융시장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FRB의 권한을 키우면서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금융서비스감독위원회를 신설키로 한 게 그것이다. 이 위원회는 위기 징후가 있는 대형 금융사를 포착해 FRB에 넘겨주는 역할을 맡는다. 재무장관이 위원장을 맡아 FRB 의장,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등 각 감독기관장을 위원으로 거느린다. 사실상 재무부가 장악하는 위원회여서 FRB와 투 톱으로 금융시스템 전반을 규제 · 감독하는 체계인 셈이다.

미 정부는 또 FRB의 지나친 권한 강화에 반대하는 의회를 의식,FRB에서 관할하던 소비자 금융상품 감독 권한을 따로 떼내 소비자금융보호청을 만들기로 했다. 소비자금융보호청은 신용카드,모기지(부동산담보대출),자동차대출 등 소비자 금융상품과 관련한 규정을 만들어 금융사들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매기는 등 처벌 권한을 부여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에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소비자에게 통보하도록 지시하고,소비자가 관련 상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권한도 갖게 된다.

부실 금융사를 질서 있게 정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지난해 허둥지둥 리먼브러더스를 파산시켜 오히려 금융위기를 심화시켰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은 이런 시스템이 부재한 데서 비롯됐다는 판단이다. 재무부가 부실화된 대형 금융사를 인수한 뒤 FDIC가 파산 등 처리 실무를 주도하는 구조다.

감독기관들의 교통정리도 단행된다. 연방저축대부조합감독청(OTS)과 연방통화감독청(OCC)을 통합해 새 기구를 만드는 반면 당초 추진했던 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간 통합은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정부는 이 밖에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금융사들이 완충 역할을 할 충분한 자본과 유동성을 엄격히 갖추도록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헤지펀드들은 SEC에 의무적으로 등록토록 했으며,장외 파생상품(OTC) 규제와 감독도 강화한다. 감독기관들이 신용평가사의 금융사 신용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규정도 바꾸기로 했다. 행정부의 이 같은 개혁안은 앞으로 의회 입법 과정과 승인을 거친 후 시행된다.

한편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웰스파고 BB&T 캐피털원금융 PNC파이낸셜서비스그룹 리전스파이낸셜 등 미 22개 은행의 신용등급 및 신용등급 전망을 일제히 낮췄다. 이들 은행의 신용카드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등 부실 대출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신용등급을 끌어내린 주 원인으로 꼽혔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