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털모자와 장갑,목도리,두꺼운 내복,겨울용 코트를 입고 다녀야 하다면 어떨까.상식적으로는 '죽을 맛'일 게 분명하다.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차가운 아이'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최근 영국 피플지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14살의 영국 소년 벤 브라운의 체온은 겨우 30도 안팎이다. 벤은 수 년째 어딜 가든 따뜻한 음료와 함께하며 미리 데워둔 장갑을 낀다. 7살 때부터 이상 체온증세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9살 되던 해,그는 의사로부터 희귀병 ‘시상하부 신드롬(hypothalamus syndrome)’이라는 진단결과를 받았다.뇌하수체 부근의 신경에 이상이 온 것. 시상하부는 체온과 허기 등을 조절하는 뇌의 일부분이다.

벤의 체온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34도, 낮에는 30도로 내려간다. 추운 날에는 29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일반인의 체온이 이 정도라면 살아있기조차 힘들 정도다. 저체온증으로 인한 혼수상태로 자칫 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벤은 낙천적이다.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사실 무척 힘들고 어딜 가든 조심해야 하지만, 기운을 잃을 필요는 없다"며 "낙심하지 않고 언제나 웃으려 한다"고 말했다.

벤은 또 "친구들도 날 부러워하며 한 번쯤은 이 증세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단, 딱 한번만"이라고 덧붙였다.
가족들은 벤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때는 눈동자가 외계인처럼 커지며, 몸짓이 느려지고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하다가 정신을 잃는다고 전했다. 지난 5월에는 증세가 악화돼 응급구조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벤의 체온이 내려가면 가족들은 재빨리 그를 뜨거운 물이 채워진 욕조로 옮겨 체온을 올린다.

이 희귀한 질병은 벤의 신체적 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8살 때 이미 변성기에 들어갔고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왕립 맨체스터 병원 소아과의 의사는 "이런 질병은 아주 희귀한 것으로, 뇌장애로 인해 신체기관에 성장장애를 받는 경우는 있지만 벤 같은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신체조건 탓에 벤은 학교에 가지 못한다. 하지만 꿈을 잃지 않고 있다. 학교에도 가고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좋은 집에서 부인과 행복하게 살고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벤은 "가족들이 가끔 열대지방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농담을 건넨다"며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 영국과 내 친구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벤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벤의 건강관리에 필요한 특수 장비들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또 미국의 저명한 의사들을 찾아가 진료를 받을 계획이다.

벤은 주위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낙천적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내 병도 마찬가지"라며 "물론 괴롭지만, 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난 '슈퍼스타'가 된 기분'"이라고 전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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