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무료 승용차 둘러싸고 공방

60%대의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는 케빈 러드 총리가 소형승용차에 과연 발목을 잡힐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조엘 피츠기번 국방부장관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장관 가운데 처음으로 사임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러드 총리는 야당이 과거사를 들먹이면서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고 애쓰자 몹시 불쾌해 하고 있다.

호주 야당은 러드 총리의 퀸즐랜드 지역구에서 사용중인 연료절약형 승용차 도요타 프리우스가 부도덕성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는 것 아니냐며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좀처럼 지지율이 상승하지 않아 애태우고 있는 야당으로서는 피츠기번 사임과 프리우스 문제 등 2가지 호재를 동시에 맞이하게 된 것.
야당은 지난 4일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러드 총리측이 프리우스를 제공한 브리즈번의 자동차딜러 존그랜트모터스에 정부의 자동차지원금이 제공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재무부에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고 언론들이 5일 일제히 보도했다.

자유당 대표 말콤 턴벌은 "총리가 자동차지원금을 받으려는 자동차딜러로부터 승용차를 무료로 제공받은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라며 러드 총리를 몰아세웠다.

존그랜트모터스는 러드 총리의 지역구에 있는 자동차딜러다.

러드 총리는 이에 앞서 지난해 3월 재산신고를 하면서 2007년말 노동당 정부 출범 당시 존그랜트모터스로부터 프리우스와 차량등록비와 보험료 등을 무료로 제공받았다고 신고했다.

프리우스는 최고급형을 기준으로 판매가격이 4만6천호주달러(4천600만원상당)에 이른다.

여기에 등록비 등을 포함하면 구매자는 5만호주달러(5천만원상당)이상 내야 한다.

이에 대해 러드 총리는 "지금은 경제에 대해 논의할 때"라며 "프리우스를 받은 사실은 이미 재산신고 때 모두 신고했던 것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프리우스는 지역구를 돌 때 이동사무실처럼 사용하고 있다"며 "존그랜트모터스에 편의를 봐달라고 주변에 얘기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동차여신업체들이 영업을 축소해 자동차딜러들이 자금난에 빠지자 20억호주달러(2조원 상당)규모의 'OZ카' 기금을 조성, 자금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 기금은 그동안 관계부처 논의 등을 거쳐 현재 8억5천만호주달러(8천500억원 상당)만 조성된 상태다.

한편 러드 총리는 이른바 '접대스캔들'로 물의를 빚은 피츠기번 국방장관의 사임의사를 수용하면서 "그의 사임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관료들에 대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분석가들은 "그런 그가 도덕성을 의심받기에 이르렀다"며 "집권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피츠기번 장관은 최근 취임전 중국계 여성 사업가로부터 여행경비를 지원받아 두차례 중국에 다녀온 사실이 드러난데다 그의 형제가 운영하는 의료보험회사 'NIB홀딩스'로부터 호텔 숙박비용을 제공받은 사실까지 불거지면서 야당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자 사임을 택했다.

일부 언론은 피츠기번 장관 사임과 러드 총리 지역구에 제공된 프리우스가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놓고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집권 2년차인 러드 총리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호주 정가의 최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시드니연합뉴스) 이경욱 특파원 kyung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