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를 탔던 각료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배를 버린 채 뛰어내렸다. 현재 총리는 생존을 위해 사투 중이다"(파이낸셜타임스),"집권 여당 의원들이 총리를 '목매달겠다'며 반란을 일으켰다. "(가디언)

경기침체와 내각 각료의 부당 비용 청구 스캔들로 지지도가 급락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사진)가 각료들의 잇따른 사퇴로 사면초가에 몰렸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FT),가디언 등은 "장관들의 잇따른 사임으로 국정 수행에 큰 타격을 입은 브라운 총리에 대해 집권 노동당 하원의원들이 총리 사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영국 언론들은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들이 브라운 총리에게 "당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퇴진하라"는 내용의 단체 항의 이메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당 중진 중심으로 '브라운 퇴진(Brown must go)' 운동 조직위가 만들어졌으며,이 조직위는 의원 80명이 이 이메일에 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직위는 50명 이상 의원들의 지지를 받으면 대중 운동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집권 여당이 이처럼 정부 수장을 흔들고 나선 것은 유럽의회 선거에 이어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정계를 뒤흔들고 있는 부당 비용 스캔들로 인해 노동당의 지지율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일간 텔레그래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당은 16%의 지지율로 제1 야당인 보수당(26%)은 물론 18%의 지지율을 기록한 극우파 정당 UK독립당(UKIP)에도 밀려 자유민주당(15%)과 꼴찌를 다투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난국을 돌파할 길은 지도자 교체라는 초강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된 상태다.

브라운 총리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각 핵심 각료들이 줄줄이 떠나고 있다. 3일 헤이젤 블레어스 지역사회장관이 개각에 앞서 사임을 표명하며 브라운 총리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하루 전에는 재키 스미스 내무장관과 톰 왓슨 내각부 장관,비벌리 휴즈 아동장관이 사임했다.

여기에 브라운 총리가 추진해오던 내각 개편에 대한 각 부 장관들의 반발도 거센 것으로 알려져 브라운 총리를 더 흔들고 있다. 브라운 총리는 스미스 전 내무장관의 후임으로 앨리스테어 달링 재무장관과 데이비드 밀리반드 외무장관,앨런 존슨 보건장관 등을 물망에 올렸지만 이들은 모두 총리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브라운 내각은 스미스 내무장관이 개인이 쓴 경비를 세금으로 충당했다는 혐의와 관련,조사를 받던 상황에서도 여동생의 런던 집에 대해 주택수당을 청구하고 남편이 케이블 TV로 본 성인영화 비용에 혈세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이어 영국 언론들이 전체 내각의 공공지출 세부 내역을 자세히 파헤치자 비용 스캔들은 곳곳으로 번져 총 4명의 장관이 물러났다. 2007년 6월 토니 블레어 총리의 뒤를 이을 때만 해도 보수당을 압도하는 지지율을 자랑했고 올초까지 금융위기에 잘 대처했다는 평을 들었던 브라운 총리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브라운 총리가 이 같은 사면초가를 돌파하고 계속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진보지인 가디언조차 '고든 브라운,노동당의 딜레마'라는 사설에서 "브라운 총리는 정부 개혁을 이끌지 못했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며 "이제 물러나야 한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