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로 자신의 운명을 또한번 극적으로 반전시켰다고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가 29일 보도했다.

고향 마을 뒷산 바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기 전 그의 명예는 만신창이였고 몇몇 친척과 전직 보좌관들은 수뢰혐의로 투옥된 상태였지만 자살 후 그의 대중적 이미지는 명성을 지키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 존경할만한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

뉴욕 타임스는 서울발 분석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부당하게 일찍 죽은 귀신을 의미하는 "한(恨)"이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 장의위원회와 경찰에 따르면 이번 주 100만명에 가까운 조문객이 노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에 몰렸다.

서울에 설치된 분향소들에도 촛불이나 국화를 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경찰은 29일 서울 한 복판에서 열릴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대규모 인파가 몰려 자칫 반정부 시위로 발전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런 극적인 사태반전은 한국에서 과연 무엇이 범죄이며 사법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변호사로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연구관으로 일한 적이 있는 션 헤이즈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자살이 왕왕 수긍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간주된다"면서 "서구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살을 어려운 상황을 견딜만큼 정신적으로 강하지 않은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나가강(68) 씨는 28일 서울 중심부에 급히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추모객들을 보면서 "나는 그가 남자답게 행동했다고 본다"면서 "그는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는 오래 동안 부패로 얼룩졌지만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두 자녀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가족의 오랜 친구로부터 600만달러를 받았다는 검찰의 폭로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줬다.

한국인의 기준으로 보면 600만달러는 작은 규모이고 이 돈이 정치적 호혜와 관련된 것인지도 분명치 않지만 재임 중 투명을 표방한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일에 연루됐다는 사실에 세상이 시끄러워 졌다.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뇌물을 바치기 위해 회사돈 수천만달러를 횡령하거나 낭비한 재벌 총수를 많이 봐 왔지만 감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재벌은 거의 없다.

1979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을 통치한 군사독재자 전두환과 노태우는 쿠데타로 집권하고 대기업에서 수억달러를 강탈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각각 종신형과 1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년 복역 후 사면됐다.

노무현의 전임자들인 김대중과 김영삼도 아들들이 뇌물을 받고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는 바람에 집권 말기 명성에 얼룩이 졌지만 검찰은 이들을 소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검찰과 보수언론이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재벌 총수를 조사할 때는 보인 일이 거의 없는 맹렬한 기세로 노 전 대통령 가족을 집요하게 추적해 몰아세우자 정치적 반칙을 의심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던 차에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자 이런 감정들이 대중적인 분노로 폭발했다고 NYT는 분석했다.

서울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박수나(30) 씨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600만달러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스캔들치고는 적고 그 돈도 재벌에게서 온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그 돈을 재벌에게서 받았다면 과거 재벌을 엄하게 처벌하면 경제를 해칠지 모른다는 구실로 언제나 부드럽게 대해온 검찰인 만큼 그를 이번처럼 심하게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 특히 그의 자살과 함께 국내 언론의 보도가 너무 빨리 바뀌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웠다면서 "매국노처럼 취급하다 하룻밤새 숭배의 대상이 됐다"고 꼬집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