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기기 편리함과 중독.고립화 등 실감

미국 첨단 정보기술(IT)의 본산인 실리콘밸리 지역의 한 고교가 최근 디지털 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IT없는 날'이라는 과제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26일 새너제이 머큐리뉴스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지역 밀피타스 고교 교사는 3학년 학생에게 지난주 12시간 동안 디지털 기기를 전혀 이용하지 않은 채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결과물을 제출해 보자는 숙제를 냈다.

교사는 학생들이 휴대전화와 아이팟은 물론이고 비디오 게임기, DVD, TV, 퍼스널컴퓨터(PC) 등 모든 디지털 기기에 아예 접근하지 않는 상황을 설정해 준 것이다.

평소 IT기기에 푹 젖어 살아온 학생들이 문자 메시지는 커녕 TV도 없는 날을 보내게 되자 도끼로 땔감을 구하고 동물을 잡아 먹던 `원시 시대'를 사는 듯 갑갑하고 지겨운 시간을 경험하면서 상당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휴대전화 속에 시계와 계산기, 캘린더 등을 내장하고 이용해 온 밀피타스 고교 한 학생은 "내 생애에 가장 길고 긴 날을 보낸 것 같다"며 "내가 디지털 기기에 중독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셰익스피어와 베오울프 등에 대해 배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는 생각이 든다"며 "학생들이 디지털 세상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고 IT 기기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세상을 알게 되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됐다"고 자평했다.

과제를 낸 밀피타스 교사는 "귀와 눈을 IT 기기에만 의존하게 되면 자신이 싫어하는 일에 대해선 듣지 않아도 되고 볼 필요도 없다"며 "이는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가두는 결과가 되고 자신이 점점 세상에서 소외되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성용 특파원 k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