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좀비은행' 망령 커진다
미국 금융 시장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아직 살아만 있지 제 기능을 못하는 이른바 '좀비은행'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지방 중소 은행의 경우 사실상 좀비은행이 300개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대형 은행들도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 등에 힘입어 경영이 좋아지는 추세이나 상업용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부실 확대가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이다.

CNN머니는 25일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투자은행인 카슨 메들린의 조사 자료를 인용,지난 3월 말 기준 애틀랜타시(메트로)와 플로리다주에 있는 50개가 넘는 은행의 부실자산 비율이 10%를 웃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지방 소형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 주택 관련 자산 투자 비중이 낮아 상대적으로 부실이 적을 것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상업용 모기지와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일부 지방 소형 은행들은 사실상 추가 대출을 중단하는 등 정상적인 영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위스 이사는 "실업자 급증에 따라 사무실 수요가 계속 감소하는 추세"라며 "상업용 모기지 부실이 커지면 미 금융사들이 다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상업용 모기지 규모가 수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코노미닷컴은 올해 모기지 연체의 60%가 실업에서 비롯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관련,뉴욕타임스는 "실업자가 급속히 늘면서 신용도가 건실했던 주택 소유자들이 속속 연체자로 전락해 주택 가압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융위기가 대량 실업자를 양산하면서 프라임 모기지(우량 주택담보대출)도 급속히 부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300곳이 넘는 지방 은행들이 좀비은행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문제은행(problem bank)'은 252개에 달했다. 올 들어선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로 증가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FDIC는 27일 3월 말 현재 문제은행 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FDIC는 올 들어 34개 지방 은행을 영업정지시키고 자산을 타 금융사로 넘겼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울 정도로 부실화된 지방 은행 중 영업정지 명령을 받은 곳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손이 태부족한 탓에 FDIC가 부실 지방 은행에 대해 제때 파산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저지주에 있는 시티즌 커뮤니티은행은 이달 초 부동산대출이 심각할 정도로 부실화된 이후에야 영업정지 명령을 받았다.

이에 따라 부실은행 처리가 적절한 시기에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위기 영향으로 은행 인수 · 합병(M&A) 시장이 얼어붙어 FDIC가 나서지 않으면 부실사가 피합병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FDIC는 올해 부실은행 파산관리부서 예산을 1억5000만달러에서 10억달러로 늘리는 등 인력과 자원을 보강했지만 급증하는 부실은행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