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위 설치, 수령액 반납 약속
미국인 전직기자가 의원 `부당청구' 전모 밝혀

영국의 여야 정치인들이 무분별한 비용청구로 험악해진 여론을 달래려고 진땀을 빼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의원들의 무절제한 지출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해 사과했다.

브라운 총리는 또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통해 지난 4년 동안 의원들의 지출 내용을 조사하고 부당청구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리엇 하먼 노동당 부당수 역시 의원들의 비용청구가 적절한 것이었는지, 새로운 지급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지 검토할 것을 하원 위원회에 요청했다.

앞서 헤이젤 블리어스 지역사회 담당 장관은 2004년 8월 런던 아파트를 팔면서 냈어야 할 재산세 1만3천332파운드를 내겠다고 밝혔다.

블리어스 장관은 납세 문제와 함께 1년에 세 차례나 집을 옮겨다니면서 가구 비용에만 5천파운드를 쓴 것은 물론, 자신의 아파트가 팔린 뒤에는 호텔에 머물며 호텔 비용까지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리어스 장관뿐 아니라 646명의 영국 하원의원들은 지난해 9천300만파운드에 달하는 비용을 청구했으며 이 중에는 정원 관리비, 애완견 사료비 등 공무상 비용으로 보기 어려운 항목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이 청구액은 의원 1인당 14만4천파운드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이들의 평균연봉 6만5천파운드의 2배를 웃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도 의원들이 이런 행태가 "비윤리적이고 잘못된 것"이라며 거듭 사과했다.

캐머런 당수는 정원 손질, 가구 구입, 테니스장 관리 등을 위해 비용을 받은 보수당 의원들이 해당 금액을 반납하기로 했다면서 본인도 1건의 청구액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캐머런 당수는 아울러 노동당 의원들의 비용지출을 심사할 위원회를 결성하겠다며 만약 의원들이 심사위원단의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당적을 박탈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제부터 의원들이 받아낼 수 있는 최대한이 아니라, 자신의 직분에 합당한 정도로 청구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영국 의원들의 무분별한 비용청구 행태를 드러낸 일등공신은 기자 출신의 미국인 여성으로 알려져 화제다.

주인공인 헤더 브룩(38)은 1997년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온 뒤 공권력 남용에 무감각한 영국인과 각종 비용을 '정당하게' 청구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놀라 영국 의원들의 '치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브룩은 2004년 영국에서 정보공개법을 어떻게 활용할지 소개한 책 '당신의 알권리'를 펴내는 동시에 워싱턴주 일간 스포크스맨 리뷰에서 미국 의원들의 지출 내역을 파헤쳤던 경험을 살려 영국 의원들의 지출명세 공개를 하원에 요청했다.

영국 의회는 2004~05년 브룩의 요청을 잇달아 묵살했지만 결국 영국의 정보 옴부즈맨과 법원은 지난해 의원들의 비용청구 영수증을 공개할 것을 명령했다.

영국 당국은 이에 따라 오는 7월 관련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일간 텔레그래프가 지난주 이를 먼저 입수해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런던 AP.로이터=연합뉴스)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