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어로 학생이란 뜻인 탈레반의 뿌리는 아프간이 아니라 파키스탄에 있다. 탈레반 운동은 1979년 옛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파키스탄 북서부에 정착한 250만명의 아프간 난민 사이에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군벌들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에 반발해 세력을 키웠다. 이들 중 파키스탄 마드라사(전통 이슬람 교육기관)에 다니던 학생들이 탈레반 지도부를 형성한다.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은 이후 탈레반의 인적 · 물적 보급기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이 19세기 후반 이 지역에서 경쟁하던 영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어졌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국경선은 파슈툰족 거주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현재 파슈툰족은 아프간 인구의 38%,파키스탄 인구의 12%를 차지하며 파키스탄 북서부의 북서변경주(NWFP)와 부족자치지역(FATA)은 거의 정확히 파키스탄 내 파슈툰족 거주지역과 일치한다. 특히 7개의 부족이 장악한 FATA는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간선도로를 장악한 수준에 불과해 실질적으로 독립국이나 다름없는 실정이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2002년 파키스탄 정부가 8만명의 병력을 동원,FATA에서 탈레반 소탕작전을 펼친 게 계기가 돼 만들어졌다. FATA 파슈툰족에게 파키스탄 군은 외세와 다름없었으며,무장 투쟁을 주장하는 탈레반이 크게 힘을 얻게 되었다.

탈레반이 NWFP를 석권하고 파키스탄의 심장부인 펀자브주 일대까지 진출한 원동력은 농민들의 지지와 펀자브주 급진 이슬람운동 세력들과의 동맹 체결이다. 현재 펀자브주 남서부 일대 상당수는 탈레반의 지원을 받는 급진이슬람 민병대에 장악당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탈레반은 토지 재분배를 내세워 가난한 농민들을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소수 대지주와 다수의 소작농으로 나눠져 있는 파키스탄 농촌지역에서 '계급투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 탈레반 병력은 3만~3만5000명에 불과하지만 50만명의 파키스탄 군을 쩔쩔매게 만들고 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