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된 공간서도 국력차 확연히 드러나"

"현재까지는 건강상태가 양호합니다.함께 투숙하고 있는 한국인 두 사람도 모두 건강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인플루엔자 A(H1N1·신종플루) 감염환자로 확인된 멕시코인 남성(25)이 5시간 가량 머무른 사실이 드러나 1주일간 격리조치된 홍콩섬 메트로파크호텔(維景酒店)에 닷새째 갇혀 있는 한국인 이일환(53)씨는 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호텔 내부 사정을 상세하게 전했다.

홍콩 정부는 지난 1일 멕시코인 남성이 신종플루 감염자로 확인되자 곧바로 이 남성이 머물렀던 메트로파크 호텔의 투숙객과 종업원들을 1주일간 격리하는 조치를 취했다.

현재 메트로파크 호텔에는 투숙객과 종업원 등 300여명이 5일째 격리된 채 사실상의 '감금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이씨를 비롯한 한국인 투숙객 3명이 포함돼 있다.

베트남과 중국을 오가면서 무역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이씨는 중국에 가기 위해 지난 1일 베트남을 출발, 홍콩에 잠시 들렀다 본의 아니게 '감금생활'을 하게 됐다.

이 호텔 1104호에 묶고 있는 이씨는 "멕시코인 남성이 내 옆방인 1105호에 투숙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약간 기분이 찜찜하지만 지난 1일 호텔 투숙수속만 밟은 뒤 곧바로 외부로 나갔기 때문에 멕시코 남성과 접촉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며칠동안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 건강상태가 좋고 같은 나라 국민들끼리 사교활동을 하는 등 비교적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에 따르면 홍콩 정부와 호텔측은 책, 내의류, 생활용품, 식료품 등 투숙객들이 원하는 물품을 요구하면 곧바로 제공하는 등 격리자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홍콩 적십자사와 사회단체, 각국 총영사관 등에서 보내는 격려품과 선물도 속속 답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홍콩 정부는 가족 단위나 단체관광을 왔다가 호텔에 격리된 사람들에 대해선 본인들이 원할 경우 5일 오후부터 호텔 대신 신계지역의 사이쿵 교야공원에 위치한 '홀리데이 빌리지'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그룹이나 가족단위의 투숙객 가운데 홀리데이 빌리지로 옮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오늘까지 신청을 하라는 게시문이 공고됐다"고 소개했다.

홍콩 보건당국은 2층 레스토랑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 투숙객과 종업원들을 상대로 하루 1-2차례 체온검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 임시 진료소에는 내과 뿐 아니라 정신과, 치과 등 다양한 의료진들이 배치돼 있다고 이씨는 말했다.

제한되고 격리된 공간이지만 메트로파크호텔 내에서도 국력 차가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객실로 향하는 1층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는 미국, 호주, 캐나다, 일본 총영사관측이 자국민 투숙객에게 편의 제공을 알리는 각종 게시물들이 걸려 있다는 게 이 씨의 전언이다.

이씨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총영사관들은 본의 아니게 고립생활을 하고 있는 자국민들을 위해 별도의 음식을 제공하면서 불편사항을 점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홍콩연합뉴스) 정재용 특파원 jj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