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중국 하이난다오 보아오 소피텔 호텔.남중국해가 바라보이는 이 호텔 메인홀에선 8차 보아오포럼의 개막 행사가 열렸다. 주인공은 1시간30분 동안 열린 개막식 중 40분간을 연설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였다. 원 총리는 연설에서 아시아에 의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외쳤다.

원 총리가 10여명의 아시아 각국 정상 한 가운데 앉은 것은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원 총리가 연설을 시작하거나 마칠 때만 유독 음악이 울린 것은 어색했다. 사회를 맡은 롱융투 보아오포럼 사무총장이 원 총리의 연설이 끝난 뒤 박수를 다시 한번 치도록 유도한 것도 참석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개막 행사에 중국인들만이 참석한 게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들도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토론 세션에 참석한 중국 고위 관리들의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이 서방과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었고,중국 경제가 안정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물론 광대한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이 글로벌 위기 극복의 한 돌파구라는 점은 전 세계가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국제적 위상이 올라갔고 이번 금융위기의 최대 수혜자란 평가도 받는다. 중국이 자부심을 갖는다고 해서 그걸 나무라거나 시샘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보아오포럼에서 보여준 것은 대국(大國)을 지향하는 중국의 모습은 아닌 듯했다. 아시아 각국이 어떻게 하면 공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이뤄지지 못했다. 주최국인 중국 측 인사들은 서방의 잘못된 금융시스템을 비난하면서 중국 체제가 정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만족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대한 배려나 고민을 함께하려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각국 정상과 기업인들이 보아오포럼을 찾은 것은 세계의 권력지도에서 중국의 힘이 커가는 걸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중국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한 측면이 더 강하다. 이번 포럼이 정식 명칭인 '보아오아시아포럼'이 아니라 '보아오중국포럼'이란 인상을 받게 된 것은 이 같은 중국의 소국(小國) 행보가 자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