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는 한국 쇠고기 시장에 관한 이슈에 관해서는 일관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에 대해서도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방하원은 비교적 조용하지만 연방상원은 쇠고기 문제에 대해 제법 말이 많은 편이다.

인구비례로 선출되는 연방 하원의원은 쇠고기 문제에 관해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미국의 3억 인구 가운데 농업인구가 2%에 불과한 탓에 농민의 절대적 지지에 기반을 둔 연방하원의원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각 주별로 2명씩 뽑는 연방상원의원의 입장에서는 농업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모든 주(州)가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 빠짐없이 농업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프벨트'(쇠고기 생산.수출이 많은 지역) 가운데 특히 몬태나를 지역구로 한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이 한국 쇠고기 시장에 대해 가장 강경한 주장을 펴고 있다.

상원 재무위원장인 보커스 의원은 기회있을 때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과 연계해 "한국은 반드시 연령에 관계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보커스 의원이 주관하는 상원 재무위는 올해초 `제111회 미 의회의 통상관련 이슈(Trade Issues in the 111th Congress)'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자동차뿐만 아니라 쇠고기와 쌀, 개성공단을 한.미FTA의 4대쟁점으로 제시, 주목을 끌었다.

이들 `비프벨트'를 기반한 상원의원들은 한.미FTA의 비준과 쇠고기 시장의 추가개방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 FTA 비준에 최대 이슈는 무엇보다 자동차 교역이라는데 이견이 없으며 쇠고기는 우선순위에서 다소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의회내에서 한국의 쇠고기시장 추가개방을 적극적으로 이슈화하려는 움직임은 일부 상원의원들에 국한된 것이며 의회내 전반적인 기류는 이 문제가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행정부 역시 한국 쇠고기 시장 문제와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 이후 농업부문의 협상담당 진용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은 탓이다.

지난해 쇠고기 개방 문제로 한미 고위급전문가 협상에서 미국측 대표를 맡았던 엘런 텁스트라 농무부 차관보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물러났고, 후임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농무부뿐만 아니라 무역대표부(USTR)에서도 차관보급의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일부 부처에서는 차관의 지명도 이뤄지지 않은 곳도 있으며, 7∼8월은 돼야 제대로 진용이 갖춰질 것이라는게 워싱턴 조야의 분위기다.

이 때문에 한국은 물론 일본이나 대만 등 미국이 그동안 쇠고기 수출에 관심을 둬 온 국가들을 상대로 한 시장개방 협상은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미 정부는 지난해 4월 광우병에 걸린 소나 30개월 이상된 소의 뇌.척수 등을 모든 동물용 사료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강화된 사료금지 조치'를 공포, 이달 27일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오바마 정부가 전임 행정부의 각종 법령들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착수하면서 해당 조치의 시행을 60일간 연기시켰다.

`강화된 사료금지 조치'의 시행은 지난해 4월 양국간 협상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는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이 조치의 시행연기에 따라 쇠고기 시장개방 압력도 한발 후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작년 6월의 추가협상 때는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때까지는 30개월령 미만 쇠고기만 수입키로 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했기 때문에 `강화된 사료금지 조치'와 상관없이 한국이 수입할 수 있는 쇠고기는 30개월 미만으로 계속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정부의 분위기는 한미간 쇠고기 교역문제가 통상정책의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쇠고기 문제가 미국의 통상정책 우선순위에서 빠져 있는 이유는 한국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워싱턴의 통상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한국의 촛불시위 양상에 미국 정계와 행정부가 크게 놀랐으며 특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신감이 극도로 팽배해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편이다.

한국의 소비자들 사이에 식품의 안전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이 확인됨에 따라 미 정부와 의회에서는 이 이슈에 훨씬 더 신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비록 30개월령 미만의 쇠고기로 제한돼 있기는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의 대 한국 수출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새롭게 한국 소비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쇠고기 시장의 추가개방 요구가 수면하로 잠복하게 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미국의 기본 입장은 한국이 국제기준에 맞춰 쇠고기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며, 중장기적으로 볼 때 FTA의 비준이나 여타 양국간 주요 현안과 연계해 쇠고기 시장의 완전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