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본고장' 스위스의 소도시 바젤은 매년 3~4월이면 세계 최대 시계 · 보석박람회로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2009 바젤 월드'(Basel World)가 지난달 26일 개막해 8일간 화려한 최신 트렌드를 보여주고 지난 2일 종료됐다.

이번 바젤 월드에는 불황에도 예년과 비슷한 세계 45개국 2000여개 시계 · 보석업체가 참가했다. 인구 19만명인 바젤에는 100여개국에서 온 바이어,관람객 등 10만명이 몰려 북적였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FSWI)가 주최한 바젤 월드는 제네바 'SIHH'(국제고급시계박람회)와 함께 양대 시계 · 보석박람회로 꼽힌다.

◆올해 트렌드는 '리바이벌'vs'럭셔리'

글로벌 경기 침체는 바젤 월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시계 트렌드는 기존 인기 모델을 재해석해 브렌드 정체성을 강조하거나 70~80년 전 디자인을 되살리는 '재해석','복원'이란 컨셉트의 신제품이 많았다. 또 불황에 대한 반작용으로,남성용 시계에도 다이아몬드를 장식하거나 고도의 복잡한 기능을 추가하는 '화려함'도 두드러졌다.

론진은 1928년과 1931년 디자인을 복원한 여성용 '레젤레강 2009 컬렉션'을 선보였다. 세 가지 디자인의 18K 화이트 골드 주얼리 시계로,1970년대 사용했던 수동 기계식 무브먼트를 장착해 단 20개만 제작했다. 1941년에 출시된 클래식 시계를 본떠 리미티드 에디션(로즈골드 333개,스틸 3333개)으로 선보인 티소의 '헤리티지 2009'도 복원 모델이다. 파일럿 시계로 유명한 브라이틀링의 '네비타이머 크로노그래프'는 125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2009개의 에디션을 선보였다.

불황에 더 화려함을 찾는 경향을 반영하듯,다이아몬드를 장식한 오버사이즈 다이얼 제품과 크로노그래프(스톱워치),문페이스(달 주기 표시장치),투르비옹(중력 오차 방지 장치) 등 복잡한 기능을 가미한 컴플리케이션 제품들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위버 럭셔리' 브랜드 브레게는 극소수 워치메이커만 구현할 수 있다는 미닛리피터(소리로 시 · 분을 알려주는 기능)를 장착한 '클래식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7637'을 선보였다.

또 여성용 시계의 화려한 다이아몬드 장식이 남성용에도 시도됐다. 대표적인 제품이 롤렉스의 '데이-데이트 II'.다이얼 크기 41㎜인 남성용 시계로 화이트골드와 옐로골드 베젤을 화려하게 다이아몬드로 세팅했다.

◆'자리'가 브랜드 파워 가늠

2000여개 브랜드가 내놓은 신제품들은 1~4관으로 나눠진 전시관을 가득 메웠지만 여기에도 엄연한 서열이 있다.

바젤 월드가 한 해 시계 트렌드를 좌우하기에 백화점의 상품 배치(MD)처럼 부스 위치로 시계 브랜드들의 파워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핵심 전시관인 1관 1층 메인부스에는 오메가 · 브레게 · 블랑팡 · 론진 · 라도 · 티소 · 티파니 · CK 등을 소유한 세계 1위 시계업체 스와치그룹이 정중앙을 차지했고 왼쪽에 롤렉스,오른쪽엔 쇼파드 · 파텍필립이 자리잡았다. 그 뒤편으로 샤넬 · 구찌 · 브라이틀링 · 태그호이어 · 위블로 등이 둘러쌌다.

이 같은 배치는 예년과 비슷하지만 올해에는 크리스털 브랜드 '스와로브스키'가 샤넬 부근에 부스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스와로브스키는 올해 시계를 론칭하면서 화려한 LED판으로 장식한 부스 설치에 60억원을 썼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2층 입구에는 에르메스 · 디올 · 크로노스위스 등이 메인 부스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무브먼트를 비롯 전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스와치를 비롯 주류 시계메이커들은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과 과감한 기술 투자로 브랜드 입지 굳히기에 나섰다.

반면 이를 구현하기 어려운 업체들은 박람회 참가를 포기했을 정도로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때문에 경제위기를 계기로 세계 시계시장 판도가 뚜렷이 재편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바젤(스위스)=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