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극한 갈등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왔던 이란이 최근 서방과 접촉을 늘리며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란은 오는 3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아프가니스탄 전략회의'에 참석하겠다고 26일 밝혔다.

하산 카시카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회의에 참석할 대표단의 수준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아프간 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네덜란드와 유엔 등이 공동주최하고 미국이 후원하는 등 서방이 주도하는 국제회의에 이란이 참석 의사를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이란의 결정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이달 초 이란에 회의 참석을 요청한 것에 대해 화답한 셈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란은 또 최근에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30년만에 대화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아파투라이 나토 대변인은 26일 AFP통신을 통해 "이란 외교관과 나토 당국자가 최근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만나 아프간 재건 문제를 중심으로 30년만에 처음으로 비공식 대화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란의 이런 움직임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집권기 때 `악의 축', `거대한 사탄' 등의 독설을 주고받으며 대립 일변도의 정책을 취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조된다.

이란의 최근 변화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잇단 유화 제스처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9일 백악관에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통해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수 개월 안에 직접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이란의 설이었던 지난 20일에는 이란 국민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오랜 긴장을 끝내고 건설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이란의 의중을 정확히 읽어내기 어려운 상태다.

이란이 화해와 대립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최근 발언들을 보면 이란은 여전히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메네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영상 메시지가 있었던 다음날인 21일 "미국의 외교정책에 진정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오바마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화답을 유보했다.

하메이니는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해소하고, 외교정책에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이란-미국 사이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하메이니는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의 새해를 축하하면서도 이란의 테러리즘 지원과 핵무기 개발의혹을 어떻게 동시에 얘기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오바마 대통령도 부시 전 대통령과 다를게 없다고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메이니는 그러나 "미국이 변화한다면 우리의 행동도 변화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과의 관계개선 여지를 남겨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싼 미-이란 사이의 간극 역시 쉽게 좁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양국 관계 개선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은 추가적인 화해조치의 일환으로 이란에 대한 여객기 부품 판매금지 해제, 미국내 이란자산 동결 해제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란은 자국의 핵 개발은 평화적 용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 종전과는 달리 이란이 국제사회 테이블로 한 걸음 다가오고 있는데 대해 고무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든 두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AFP통신을 통해 "아프간 전략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이란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이란이 이번 회의 참석을 통해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 긍정적인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